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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2025년을 보내며》 6부. 세계는 하나의 이야기를 갖지 못했다― 2025년, 설명이 무너진 해에 대한 기록

1. 설명이 사라진 세계

 

2025년을 지나며 가장 분명하게 확인된 변화는 위기의 규모나 충격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세계는 분명 여러 위기 속에 있었지만, 그 위기들을 하나의 문장으로 묶어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국제기구들은 경제적 위험이 누적되고 있다고 경고했지만, 어느 하나를 ‘결정적 위기’라고 명명하지는 못했다. 성장률은 둔화되었으나 붕괴는 아니었고, 정치적 갈등은 심화되었으나 체제 전환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위기는 존재했지만, 그것을 대표할 이름은 부재했다.

이 변화는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정보의 과잉 속에서

 

발생했다. 2025년의 세계는 데이터와 분석으로 포화되어 있었다. IMF, 세계은행, OECD는 모두 ‘복합 위기’를 언급했지만, 그 복합성은 오히려 설명을 약화시켰다. 위기가 너무 많아졌고, 서로 다른 차원에서 동시에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설명은 다른 설명을 즉시 무효화했고, 단일한 원인 분석은 현실을 단순화한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세계는 더 많이 말했지만, 그 말들은 서로 연결되지 못한 채 흩어졌다.

이때 무너진 것은 세계가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던 방식이었다. 냉전, 세계화, 민주화, 신자유주의처럼 한 시대를 관통하던 개념들은 더 이상 2025년의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이 개념들이 틀려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예외와 변형이 누적되었기 때문이다. 설명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공통 언어로 기능하지는 못했다. 2025년은 그렇게 ‘설명이 사라진 세계’가 현실이 된 해였다.


2. 헤게모니는 무너진 것이 아니라, 전제되지 않았다

 

이 상황을 두고 많은 분석은 ‘헤게모니의 붕괴’를 말한다. 그러나 2025년의 세계를 정확히 설명하는 표현은 붕괴가 아니라 부재에 가깝다. 기존의 지배 질서는 무너졌다고 선언되지 않았고, 새로운 질서가 등장하지도 않았다. 대신 사람들은 더 이상 어떤 헤게모니도 삶의 전제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치, 이념, 국가, 제도 어느 것도 자동적으로 신뢰를 얻지 못했다.

이 변화는 여론조사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미국과 유럽, 한국을 포함한 다수 국가에서 기존 정치 체제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비율은 크게 하락했지만, 동시에 급진적 대안 체제에 대한 지지도는 상승하지 않았다. 이는 체제에 대한 불신이 곧바로 체제 전복의 욕망으로 이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기존 질서를 신뢰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질서를 향해 집단적으로 이동하지도 않았다.

이 상태는 저항의 부재가 아니라 저항의 조건 상실에 가깝다. 과거의 저항은 언제나 싸울 대상이 분명했다. 그러나 2025년에는 싸움의 대상 자체가 흐릿해졌다. 무엇을 무너뜨려야 하는지보다, 무엇을 굳이 믿지 않아도 되는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되었다. 헤게모니는 도전받지 않았다. 다만 더 이상 삶을 조직하는 중심으로 작동하지 않았을 뿐이다.


3. 문화가 가장 먼저 반응한 이유

설명의 붕괴는 정치보다 문화에서 먼저 감지되었다. 문화는 언제나 사회의 무의식을 가장 빠르게 반영한다. 2025년의 영화, 드라마, 음악은 공통적으로 하나의 특징을 보였다. 더 이상 세계를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신 문화는 설명이 사라진 자리에서 감정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를 묻기 시작했다.

영화는 여전히 정의를 말했지만, 관객은 그 정의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극장 관객 수는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고,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라는 표현은 점점 공허해졌다. 반면 OTT에서는 일상 서사를 중심으로 한 작품들의 완주율이 높아졌다. 거대한 사건이나 명확한 결론을 제시하지 않는 이야기들이 오히려 더 오래 소비되었다.

이는 관객이 서사의 완성보다 서사의 안정성을 원했음을 보여준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였다. 분노를 조직하는 노래보다는

감정을 정돈하거나 분해하는 음악이 반복 재생되었다. 이 현상은 취향의 변화라기보다, 설명에 대한 피로의 결과였다. 문화는 더 이상 세계를 대표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세계 속에서 버틸 수 있는 감각을 기록했다. 문화는 헤게모니를 대신하지 않았고, 헤게모니가 사라진 상태를 가장 먼저 인정한 영역이었다.


4. 행동은 사라지지 않았다, 목적이 바뀌었을 뿐

설명이 무너졌다고 해서 행동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2025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참여했고, 여전히 목소리를 냈다. 다만 그 행동의 목적이 달라졌다. 과거의 행동이 미래의 완성을 향했다면, 2025년의 행동은 현재의 지속을 목표로 삼았다.

대규모 시위는 줄어들었지만, 소규모·반복적 참여는 증가했다. 서명, 후원, 온라인 행동 같은 저비용 참여가 확산되었고, 이는 정치적 무관심이라기보다 감정과 에너지를 관리하려는 선택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한 번의 폭발로 모든 것을 바꾸겠다는 약속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았다. 대신 무너지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현실적인 목표로 삼았다.

이 변화는 윤리적 후퇴가 아니라 조건의 변화였다. 장기적인 불확실성이 상수가 된 사회에서, 감정의 과잉은 곧 소진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행동은 분산되었고, 감정은 관리되었다. 행동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그것은 더 조용했고, 더 개인적이었으며,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는 형태로 바뀌었다.


5. 혁명도 종말도 아니었던 해

2025년에는 혁명도 없었고 종말도 없었다. 세계는 무너지지 않았고, 동시에 새로워지지도 않았다. 이 애매한 상태야말로 2025년의 핵심이었다. 모든 것이 진행 중이었고, 동시에 유보된 상태였다. 국제정치학계에서 이 시기를 ‘위기 이후의 정체 구간’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경제 지표는 급변하지 않았지만, 불안정한 상태로 고착되었다. 정치적 갈등은 지속되었지만, 결정적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 병렬적 정체 상태는 불안정하지만, 동시에 단일한 지배 서사가 개인의 삶을 압도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헤게모니의 공백은 위험이었지만, 강제되지 않은 상태이기도 했다.

2025년의 사람들은 무엇을 믿어야 할지 확신하지 못했지만, 무엇을 무조건 믿지 않아도 된다는 점만큼은 분명히 인식했다. 이 인식은 소극적으로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세계를 다시 사유할 여지를 남겼다.


6. 2025년이 남긴 유산

2025년은 끝의 해라기보다 ‘끝이 유예된 해’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무언가가 명확히 종료되지는 않았지만, 많은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게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세계는 여전히 움직였고, 문화는 계속 생산되었으며, 사람들은 삶을 이어갔다. 다만 그 모든 것은 더 이상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되지 않았다.

이것이 2025년이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이다. 세계는 설명을 잃었지만 침묵하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말했지만 설득하려 들지 않았고, 행동했지만 완성을 약속하지 않았다. 무엇을 이룰 것인가보다, 어떻게 계속 존재할 것인가가 중심 질문이 되었다. 2025년은 바로 그 질문이 세계의 중심으로 이동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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