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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12월 15일(1791년·1890년), 권리장전과 시팅 불 같은 날짜, 한 세기가 만들어 낸 두 개의 풍경


1. 같은 날짜, 서로 다른 두 장면을 마주 세우면

1791년 12월 15일과 1890년 12월 15일.
달력 위에서는 같은 날짜지만, 두 장면 사이에는 거의 정확히 한 세기(99년)의 간격이 놓여 있다.

1791년의 12월 15일, 미국에서는 연방 수정헌법 1조부터 10조까지, 이른바 ‘권리장전(Bill of Rights)’이 최종 발효되었다. 권력의 손을 한 번 더 묶고, 개인의 자유를 문장으로 새겨 넣는 사건이었다.


1890년의 12월 15일, 같은 나라에서, 그러나 전혀 다른 공간에서, 라코타족 지도자 시팅 불(Sitting Bull)은 체포 과정 중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미군과 기마경찰이 보호구역 한복판으로 들이닥쳐, 가장 약한 위치에 있던 이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 날이었다.

두 날짜를 나란히 놓으면, 하나의 단순한 질문이 생긴다.
“1791년에 약속된 권리는, 100년 뒤 1890년의 시팅 불에게도 유효했는가?”
이 질문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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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791년 12월 15일, 종이 위에 새겨진 ‘보편’이라는 말

1791년 12월 15일, 연방 수정헌법 1~10조가 발효되면서 미국 헌법은 비로소 ‘권리장전’이라는 별칭을 갖게 된다. 표현·언론·종교의 자유, 집회의 자유, 영장 없는 수색·체포의 금지, 적법절차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 오늘 우리가 ‘기본권’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뼈대가 이때 정리되었다.

문장만 놓고 보면 이 권리들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의회는 ~을 제한하는 법을 만들 수 없다”, “누구든지 ~할 권리를 가진다” 같은 식의 문법 속에는 인종·성별·계급의 구분이 등장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보편적인 인간을 가정하고 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1791년의 현실로 돌아가 보면, 이 보편성은 명백하게 제한적이었다.
노예제는 여전히 합법이었고, 흑인·원주민·여성은 정치 공동체의 온전한 구성원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투표권과 재산권, 교육과 법적 보호는 백인 남성 시민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즉, 1791년 12월 15일에 발효된 것은 “모든 사람의 권리”가 아니라, 특정한 사람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체제였다. 종이 위 문장은 이미 ‘보편’을 말하고 있었지만, 현실은 그 보편을 선택적으로 적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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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890년 12월 15일, 권리의 바깥에서 죽은 한 사람

시간을 거의 한 세기 앞으로 넘겨, 1890년 12월 15일을 보자.
무대는 동부 도시의 의사당이 아니라, 사우스다코타의 인디언 보호구역이다.

이 시기 북미 원주민 사회는 이미 수십 년에 걸친 전쟁과 조약, 강제 이주를 지나온 상태였다. 라코타·수(Sioux)를 비롯한 여러 부족들은 땅과 이동의 자유,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잃어 갔고, 정부가 정해 준 협소한 보호구역 안에 갇혀 살아야 했다. 굶주림과 질병, 군과 기마경찰의 감시가 일상인 공간이었다.

그 가운데 시팅 불은 단순한 추장이 아니라, 저항과 자존심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미 정부 입장에서 그는 “통제해야 할 위험 인물”이었고, 많은 원주민에게 그는 “그래도 아직 꺼지지 않은 불빛”에 가까운 존재였다.


1890년 12월 15일 새벽, 체포를 명령받은 기마경찰들이 그의 집을 둘러싸고, 몸싸움과 혼란 속에서 총성이 울린다. 그는 보호구역 한복판에서, 자기 땅이라고 믿던 곳에서, 미군과 경찰의 총탄에 쓰러진다.

이 장면을 1791년의 권리장전과 나란히 놓고 보면 질문이 선명해진다.
영장, 적법절차, 재판을 받을 권리, 과도한 국가 폭력의 금지.
이 모든 것은 이미 헌법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시팅 불에게는 거의 적용되지 않았다. 그는 분명히 미국 영토 안에서 죽었지만, 헌법이 실제로 도달하는 세계의 경계 바깥에 서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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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 세기 동안 넓어진 권리, 그러나 끝까지 닿지 못한 자리

1791년과 1890년 사이, 미국 사회는 겉으로 보기엔 ‘진보’의 시간을 걸어온 듯 보인다.
연방 체제가 더 공고해졌고, 남북전쟁을 거치며 노예제는 법적으로 폐지되었다. 헌법 수정과 판례를 통해 권리의 목록은 점차 늘어났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말은 정치적 구호이자 도덕적 기준으로 반복되었다.

그러나 시팅 불의 죽음은 이 100년이 모든 사람에게 같은 속도로 흐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권리장전이 발효된 1791년에도, 원주민들은 이미 조약 파기와 토지 수탈, 학살을 겪고 있었다. 100년 뒤 1890년에도 그들은 보호구역에 갇힌 채 ‘치안’과 ‘질서’라는 이름의 감시를 견뎌야 했다.


그래서 12월 15일이라는 날짜를 겹쳐 보면, 이 한 세기는 “권리가 점점 넓어져 온 시대”라기보다, “권리가 넓어지는 속도가 서로 다른 시대”였음을 드러낸다.
헬멧 속 얼굴이 아닌, 보호구역 한복판의 원주민에게는 여전히 그 권리가 완전히 도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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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2월 15일이 던지는 오늘의 질문

이렇게 보면 12월 15일은 단순히 “좋은 헌법이 만들어진 날”과 “비극적인 죽음이 일어난 날”이 겹친 날짜가 아니다.
“권리를 약속한 문장”과 “그 약속에서 끝내 배제된 사람들”이 한 세기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서 있는 날짜다.

1791년 12월 15일에 적힌 권리장전의 문장은 오늘도 여러 나라의 민주주의를 설명할 때 인용된다.
하지만 1890년 12월 15일에 쓰러진 시팅 불의 몸은, 우리에게 이렇게 되묻는 것 같다.

“헌법이 말하는 그 ‘우리’ 속에, 나는 포함되어 있었는가?”




이 질문은 19세기 북미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질문이기도 하다.
흑인, 원주민, 이주민, 난민, 성소수자, 장애인, 정치·경제 구조의 바깥쪽에 서 있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에게도 헌법과 권리의 문장은 동일한 시제로 작동하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언젠가 도달할 미래형 약속”에 머물러 있는가.

12월 15일의 두 사건을 함께 떠올리는 일은, 그래서 과거를 단순히 병치하는 장난이 아니라, 이런 질문을 우리 쪽으로 돌려 보내는 작업에 가깝다.
“이 권리는 지금, 누구에게까지 실제로 닿아 있는가?”

그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려는 시도 자체가,
1791년의 문장과 1890년의 죽음 사이에 놓인 100년의 간격을
조금이라도 줄여 나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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