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92년 1월 8일, 일본대사관 앞에 선 첫 수요일

1992년 1월 8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인도에 몇 명의 노년 여성들이 섰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다.
전쟁이 끝난 지 거의 반세기가 지났지만, 그들은 여전히 “증언”보다는 “민감한 문제”로 취급되었고, 국가 간 합의와 외교적 수사 뒤에 가려진 채 남아 있었다.
그날 피해자들과 정대협(현 정의기억연대)은 매주 수요일 정오, 같은 자리에서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요구 사항은 단순했다.
전쟁 범죄로서의 책임 인정, 진상 규명, 공식 사죄, 법적 배상, 역사 교육을 통한 재발 방지.
처음에는 작은 집회였다.
그러나 수요일은 쌓이기 시작했고, 2002년에는 “단일 주제로 가장 오래 지속된 정기 집회”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피해자들의 몸은 계속 늙어 갔지만, 그들이 들고 선 종이 피켓과 떨리는 목소리는 한국 민주화 이후 시민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국가폭력의 과거를 끌어올 것인지를 보여 주는 하나의 형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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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11년 12월 14일, 1000번째 수요일과 ‘평화의 소녀상’

이렇게 쌓인 수요일이 1000번째에 도달한 날이 2011년 12월 14일이다.
그날 정오, 일본대사관 앞 길 위에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시민과 학생, 종교인, 해외 연대 단체 활동가들이 모였다. 추운 겨울, 영하 가까운 날씨였지만 인도는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했다.
이날을 맞아 정대협은 새 기념물을 세우기로 한다.
작가 김운성·김서경 부부가 만든 ‘평화의 소녀상’이다.
치마저고리를 입은 소녀가 의자에 앉아 있고, 두 손은 단단히 쥐어져 있으며, 옆에는 누구나 앉을 수 있는 빈 의자가 하나 놓여 있다.
짧게 잘린 머리, 발밑의 작은 새, 의자 그림자의 방향 같은 디테일에는 “빼앗긴 시간”과 “돌아오지 못한 소녀들”에 대한 상징이 겹겹이 쌓여 있다.
이 동상은 웅장한 영웅상이 아니라, 길가에 조용히 앉은 한 사람의 모습에 가깝다.
그래서 보는 사람들은 설명을 읽기 전에 이미 알고 있다.
이 자리는,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증언을 대신해 영하의 바람을 계속 맞고 앉아 있을 누군가를 위해 준비된 자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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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010년대, 세계 곳곳으로 옮겨 앉은 소녀와 1400번째를 넘긴 수요일

1000번째 수요시위 이후, 평화의 소녀상은 서울 한복판을 넘어 한국 여러 도시와 해외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부산, 인천, 광주, 대구뿐 아니라 미국, 독일, 호주 등지에도 소녀상이 세워졌다.
각 도시의 소녀상은 조금씩 다른 표정과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의자에 앉아 정면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기본 자세는 대부분 비슷하다.
2015년에는 한일 정부가 이른바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표방한 12·28 합의를 발표하며, 일본은 재단 출연금 10억 엔과 총리 사과 성명을 내고, 한국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비난·비판 자제”를 약속하는 문장을 담았다.
이 합의는 “피해자 중심이 아니다”, “소녀상 이전을 전제로 삼았다”는 비판 속에, 한국 내 여론과 시민사회로부터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 사이 수요시위는 멈추지 않았다.
2019년 8월에는 1400차 시위를 넘겼고,
2022년에는 1500차를 넘긴 기사들이 실렸다.
2025년 2월 기준으로는 1680회를 넘겼다는 보도도 나왔다.
“합의가 끝내지 못한 문제”를, 거리의 시간은 계속 붙들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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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법정으로 옮겨간 싸움과 외교의 장에서 이어지는 충돌

2010년대 후반부터 2020년대에 이르기까지, 위안부 문제는 거리뿐 아니라 법정과 국제기구로도 무대를 옮겼다.
2021년 1월, 서울중앙지법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된 손해배상 소송에서 12명의 피해자에게 1인당 1억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일본이 주장한 ‘국가면제(주권면제)’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전시 하 성노예제라는 중대한 인권 침해에 대해서는 예외가 인정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일본 정부는 이에 강하게 반발했지만, 2023년 11월 서울고법 역시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 소송에서 일본의 면제를 부정하고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이 판결들은 “국가 간 조약으로 개인의 기본적 인권 청구권까지 일괄 정리할 수 있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냈다.
외교 현장에서는 여전히 긴장이 남아 있다.
일본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2015년 합의를 근거로 “법적 책임은 이미 해결됐다”고 주장하며, 한국 법원의 배상 판결과 집행을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반면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는 “과거의 합의가 피해자의 동의와 정의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일본이 판결과 유엔 인권기구 권고를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2025년에는 새로 집권한 이재명 대통령이 한·일 관계 전반에 대해 “과거 합의도 국가 간 약속인 이상 함부로 뒤집지 않겠다”고 말하는 한편, 일본 정부에게는 역사적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할 것을 촉구하는 발언을 내놓았다.
외교의 언어와 법정의 언어, 시민들의 언어가 서로 엇갈린 채 같은 문제를 붙들고 있는 것이 2025년 현재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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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025년, 일곱 분의 생존자와 계속되는 수요일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피해자들에게는 더 잔인하게 흐른다.
한국 정부에 공식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해마다 줄어, 2025년 3월 기준으로 생존자는 7명만 남아 있다는 집계가 나왔다.
그 사이 수요시위는 1700회를 향해 가고 있다.
이제는 대부분의 집회에 직접 나올 수 없는 할머니들을 대신해, 청소년과 대학생, 젊은 활동가, 해외에서 온 연대단체들이 피켓을 들고 선다.
위안부 문제는 더 이상 “한 세대의 경험”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묻는 교육·기억의 이슈가 되어 가는 중이다.
국제사회에서도 이 문제는 여전히 현재형이다.
유엔 인권기구는 2025년에도 일본과 한국 정부에 공식 서한을 보내, 피해자들이 “진실·정의·배상”에 실질적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영국·미국 등에서는 전시 성폭력과 연결된 특별 전시와 토론회가 열리며, 평화의 소녀상은 “위안부”를 넘어서 전쟁 성폭력 피해자 전체의 상징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래서 2011년 12월 14일, 일본대사관 앞에 처음 앉은 소녀상은 2025년에도 여전히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국가가 저지른 폭력 앞에서,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생존자가 거의 사라진 뒤에도, 이 이야기를 계속 말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수요일 정오마다 반복되는 이 질문이 사라지지 않는 한, 12월 14일은 단지 “1000번째 집회가 있었던 날”이 아니라, 한국과 세계가 전쟁 성폭력의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책임질 것인지 묻는 날짜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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