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속에서 쓰인 피의 편지
1793년 7월 13일, 장 폴 마라의 마지막 날
1793년 7월 13일, 프랑스의 한 집 안 욕실에서
한 남자가 물 속에 몸을 담근 채 죽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장 폴 마라.
프랑스 대혁명의 한가운데서,
민중을 대변한다는 명분 아래
칼날보다 더 날카로운 펜을 들고 싸우던 인물이었다.
마라는 원래 의사였다.
인간의 고통을 치료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혁명이 시작되자,
그는 더 이상 진료실에 머물지 않았다.
신문 『인민의 벗』을 발행하며
귀족, 반혁명 세력, 심지어 같은 혁명 동지들까지 고발했다.
그의 지면 위에 이름이 오른 사람들은
대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피부병을 앓고 있었다.
병은 깊고 고통스러웠고,
유일한 안식처는 욕조였다.
마라는 하루 대부분을 욕조 안에서 보냈다.
그리고 그곳에서 편지를 읽고, 글을 쓰고,
민중을 위한 정의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정의는 날이 갈수록 피에 젖어갔다.
이날, 그의 문을 두드린 이가 있었다.
샤를로트 코르데.
24살의 젊은 여인이었다.
귀족 출신이지만, 혁명의 희생자였다.
사랑했던 사람들, 가까웠던 이들이
마라의 지면에 오르고, 단두대로 사라졌다.
그녀는 생각했다.
‘마라가 죽으면, 피는 멈출 거야.’
그녀는 거짓된 사연을 적은 편지를 들고
마라를 찾아갔다.
병든 마라는 욕조에 몸을 담근 채
그녀를 맞이했다.
그녀는 평온하게 말을 이어갔고,
마라는 경계심을 풀었다.
그 순간,
그녀는 옷 속에 숨겨둔 칼을 꺼내
그의 가슴을 찔렀다.

피가 물 위로 피어올랐다.
마라는 비명을 지르지도 못한 채
욕조 안에서 절명했다.
그의 손에서 펜이 떨어졌고,
마지막으로 읽던 편지는 물에 젖어
번져버렸다.
샤를로트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그를 죽였지만, 백만 명을 살렸습니다.”
열흘 뒤, 그녀는 단두대에 섰다.
고개를 들고 말했다.
“나는 평화를 원했을 뿐입니다.”
칼이 떨어졌고,
그녀의 신념 또한 그곳에 남겨졌다.
마라의 죽음은
혁명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오히려 더 격렬한 공포 정치가 시작되었다.
그는 순교자로 칭송되었고,
화가 다비드는 그의 죽음을 거대한 그림으로 남겼다.
그의 이름을 부정하는 것조차
죄가 되었다.
혁명은 점점 더 피를 원했다.
어제까지 친구였던 사람도,
의심 하나로 단두대에 올랐다.
정의는 어느새 칼을 닮아갔다.

왜 우리는 이 장면을 기억해야 할까?
마라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샤를로트가 비범해서도 아니다.
그들이 겪은 일은,
오늘의 우리 삶과 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도
‘정의’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찌르고,
‘신념’이라는 깃발 아래
또 다른 사람을 몰아세운다.
때로는 선한 분노조차
폭력의 얼굴을 하고 있다.
마라의 욕조는 그저 죽음의 장소가 아니다.
확신이 만든 무덤이고,
질문 없는 정의가 낳은 슬픈 끝이었다.
그 물 위에 번졌던 피와 종이의 잔해는
오늘도 우리에게 묻고 있다.
“너는 누구의 이름을 쓰고 있는가?” “그 믿음은 정말 누군가를 살리고 있는가?”
우리는 쉽게 말하지만,
쉽게 찌르지만,
쉽게 잊지만—
기억해야 한다.
욕조 안의 마라,
칼을 든 샤를로트,
그리고 그들 사이에 있었던
뜨거운 두 개의 신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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