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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7월 13일, 할머니의 기억

🕯 눈물조차 말라버린 할머니의 증언

1992년 7월 13일, 김복동 할머니의 고백을 들은 날



무대 위엔 마이크 하나가 놓여 있었다.
오래 비어 있던 자리처럼 보였고,
누군가 말하길 기다리고 있던 자리 같았다.

노란 조명이 천천히 번졌고,
사람들은 숨을 고르며 기다렸다.

김복동 할머니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발끝을 조심스레 옮기며 마이크 앞으로 다가섰고,
손은 가슴 위에 조용히 얹혀 있었다.


자리에 앉지 않았다.
입을 열었다.

“내가 그 피해자요.”

처음엔 너무 작게 들려서
누구도 바로 듣지 못했다.
하지만 모두가 들었다.
그 말은 공기 속으로 퍼졌고,
마치 오래 참았던 눈물처럼
가슴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날 이후, 김복동 할머니의 이름은
단지 한 사람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

"나는 열네 살이었다"


1941년.
한 소녀가 있었다.
공장에서 일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어머니는 도시락을 싸주었고,
소녀는 새 신을 신고 따라 나섰다.

그곳은 공장이 아니었다.
그곳은 지옥이었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
말이 통하지 않는 땅에서
모욕과 폭력이 언어처럼 날아들었다.

욕설이 총보다 먼저 날아왔고,
식사보다 먼저 폭행이 시작되었고,
하루가 끝나기도 전에 또 누군가가 문을 열었다.

밤은 쉬지 않았고,
고통은 이름이 없었다.





"나는 살아남기로 했다, 말하기 위해서"

전쟁이 끝났지만
고향은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돌아온 김복동 할머니를 외면했고,
그 누구도 그녀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김복동 할머니는 말하지 않았다.
무려 50년 동안.
가슴속에 묻은 말을
하루하루 더 깊이 숨기며 살아야 했다.

그러다 1992년 7월 13일.
서울의 한 회의장에서,
김복동 할머니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 말은 날카롭지 않았다.
분노도 없었다.
하지만 그 침착함이,
그 조용한 울음이,
가장 큰 울림이 되었다.





"나는 피해자가 아니다, 나는 증언자다"

그날 이후, 김복동 할머니는
조용히 싸우기 시작했다.
국제회의장에 섰고,
일본을 향해 걸었고,
전 세계 사람들 앞에서 말했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김복동 할머니는
‘용서받지 못한 평화’를 말했고,
‘말하지 않는 정의는 없다’고 말했다.

세상은 그녀를
단지 피해자로 기억하려 했지만
김복동 할머니는
스스로를 행동하는 증언자라고 불렀다.


---

수요일의 자리

김복동 할머니의 고백 이후
서울 일본 대사관 앞엔
매주 수요일마다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한 사람, 두 사람.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목소리는 점점 더 또렷해졌고,
그 자리에 소녀상이 세워졌다.

긴 머리를 질끈 묶고,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앉은 동상.
눈도, 입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
말이 되었다.

어느 해 겨울, 눈 쏟아지던 날
김복동 할머니는 소녀상 옆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기자가 물었다.
“춥지 않으세요?”

김복동 할머니는 말했다.
“나는 아직 전쟁 중이에요.”




김복동 할머니가 떠난 뒤

2019년 1월, 김복동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빈소에는 조용히 흐느끼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중엔 아주 많은 젊은 얼굴들도 있었다.

김복동 할머니는 사과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 말은 사람을 바꾸었고,
기억을 만들었고,
수요일을 새로 썼다.

팻말은 남았고,
노란 리본도 남았고,
그 자리에 함께했던 사람들의 온기도 남았다.


---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증언을 쓰고 있다

그날 김복동 할머니가 마이크 앞에 섰을 때
누군가는 고개를 숙였고,
누군가는 숨을 참았다.
나는 그 자리에 있진 않았지만
그 증언을 들은 사람들 중 한 명이 되었다.

이 글은 기억이 아니라
참을 수 없던 침묵에 대한 응답이다.

나는 듣고,
지금 이렇게 쓰고 있고,
잊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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