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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7월 12의 슬픈 역사


🕯 여름 산, 피로 물들다
1950년 7월 12일
대전형무소  민간인 학살 사건




1950년 7월 12일,
대전의 어느 골짜기엔 바람조차 조용히 지나갔다.
그 바람 속으로
눈을 가린 채 끌려나온 사람들의 발자국이 이어졌다.
묶인 손목이 떨리고 있었고,
그들이 마지막으로 본 건
산등성이 넘어가는 새벽빛 한 줄기였다.

총소리는 기록되지 않았다.
비명은 남지 않았다.
그날, 국가라는 이름 아래,
사람들은 사람 아닌 것으로 취급당했고
입을 막은 채 땅에 던져졌다.





이름조차 남지 않았다

그들은 죄가 없었다.
재판도 없었고, 판결도 없었다.
어떤 이는 그저 사상을 의심받았고,
어떤 이는 누군가의 친척이라는 이유로
형무소에 끌려와 있었다.

국가는 그들에게 총을 겨누었다.
“적과 내통할 우려가 있다”는 말 한마디로
한 명, 두 명, 수백 명의 사람이
짐짝처럼 실려 나갔고
대전 외곽의 산자락에 쌓여갔다.

이름이 적히지 않은 종이들,
가계부도 아니고 명부도 아니었던 그 서류들엔
오로지 죽이라는 동그라미만 남아 있었다.
살아야 할 이유는 듣지 않았다.
죽여야 할 이유도 묻지 않았다.


---

무덤이 없었다, 그래서 슬픔은 떠돌았다

그들은 묻히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이름 없는 땅 속에 쓸려 들어갔다.

그 산에는 비석이 없었다.
묘비 하나 세울 수 없었고,
누군가 그 자리에 절을 하면
“빨갱이”라는 낙인이 따라붙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자식의 무덤을 향해 절하지 못했다.
눈물이 나도,
그걸 흘릴 자리를 몰랐다.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아버지가 사라진 그날에
딸은 그대로 멈춰 있었고,
아들이 다시는 부르지 못한 아버지의 이름은
가족 안에서도 금기가 되었다.


---




총은 뒤에서 쐈다

대부분의 시신은 뒤통수에 총상을 입었다고 했다.
사람들이 무릎을 꿇은 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총을 쏜 이는,
같은 나라의 군인이었다.
그 군복은 대한민국 정부의 것이었고,
방아쇠는 명령으로 당겨졌다.

그들이 죽어가던 순간,
어떤 이는 아내의 이름을 불렀고,
어떤 이는 두 손을 모았고,
어떤 이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총성에 밀려 쓰러졌다.

총알은 뼈를 꿰뚫었고,
뼈는 흙 속에 쓸려갔다.
흙 속의 그늘이 더 이상 죽은 자의 것만은 아니었다.


---

진실은 오래 걸려 돌아왔다

그날로부터 50년이 넘게 지났다.
국가는 침묵했고,
언론은 외면했고,
역사는 묻어버렸다.

유족들은 ‘입 닫는 법’을 먼저 배워야 했고,
국가를 말하는 순간 가족까지 위험해졌다.
조국은 그들에게
살아 있는 자의 공포만을 남겼다.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사건을
“국가에 의한 민간인 학살”로 규정했다.
그러나 진실은 선언으로 끝나지 않았다.
죽은 자의 수는 밝혀지지 않았고,
무덤은 여전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채 남아 있었다.



---

우리는 그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어야 한다

대전형무소 민간인 학살.
1950년 7월 12일.
그날, 국가는 자신이 보호해야 할 국민을
총으로 쏘았고,
그들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고,
그 가족에게조차 통보하지 않았다.

이 나라는 그 날을 모른 척한 채
수십 년을 지나왔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날은 전쟁보다 잔혹했고,
침묵보다 깊은 죄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의 이름을 다시 부르는 일만큼은
멈춰선 안 된다.



#해시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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