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의 끝, 무덤의 시작
1995년 7월 12일, 스레브레니차 학살

보스니아 내전의 여름은 뜨겁지 않았다.
포탄으로 무너진 지붕 밑엔
식어버린 저녁 식탁이 놓여 있었고,
사람들은 유엔이 그려준 파란 헬멧만 바라보고 있었다.
스레브레니차.
1993년, UN은 이곳을 “안전지대”로 선언했다.
그러나 1995년 7월 11일,
세르비아계 민병대가 그 지역을 점령했고
하루 만에, 그곳은 도살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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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2일 아침, 남자들이 사라졌다
남성들은 ‘조사’를 이유로 따로 분리되었다.
소년부터 노인까지,
걷는 자는 걷게 하고,
앉는 자는 끌고 갔다.
그들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고,
번호표도 없었고,
손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그날 그곳에 모인 UN 평화유지군은
총을 들고 있었지만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어떤 병사는 아이의 손을 잡아줬고,
어떤 병사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학살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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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0명, 총성과 구덩이
남성 8,372명.
그 수는 단지 계산된 숫자였다.
사람은 이미 사라졌고,
그 자리에 남은 건
흙에 파묻힌 손목,
산 아래 깊게 파인 구덩이,
그리고 피가 스며든 천이었다.

총은 뒤에서 쐈다.
무릎 꿇은 자의 뒤통수에
방아쇠는 한 번씩 당겨졌고,
죽지 않은 자는 다시 맞았다.
그들은 이름도 묘비도 없이 묻혔다.
한 무덤에 수십 구씩 겹쳐진 시신은
부서진 뼈와 함께 구분되지 않았다.
피해자의 나이: 최연소 12세.
가장 많이 죽은 연령: 17세.
그들은 성인이 되기 전,
국가도 아니고,
전쟁도 아닌,
이름 없는 총알에 생을 잃었다.
유엔은 거기에 있었다
네덜란드군은 그곳에 주둔하고 있었다.
“보호하겠다”는 선언은
탱크 뒤편으로 숨었고,
수천 명이 트럭에 실려 갈 때
그들은 명령을 받지 않았고
무기를 꺼내지 않았다.
총이 울리는 동안,
헬멧은 반짝였고,
무전기는 고장났고,
도움은 오지 않았다.
그날, 세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진실은 실시간으로 발생했고,
거짓은 공식처럼 반복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무덤이 갈라졌다
1996년부터 유해 발굴이 시작되었다.
대지의 단층 사이에서
한 명의 손가락,
두 명의 치아,
세 명의 흉곽이
다른 장소에서, 서로 다른 해에 발견되었다.
그들은 시신을 감추기 위해
폭파했고, 나눴고, 옮겼다.
그래서 어떤 유족은
하나의 무덤에
두 개의 시신 일부를 동시에 묻었다.
지금도 유해의 일부는 찾지 못했다.
그러니 가족은 아직도
그 사람을 완전히 보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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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너무 늦게 왔다
학살 책임자 라트코 믈라디치는
22년이 지난 2017년에서야
국제재판소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국민을 보호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누군가의 죽음을 명령한 이는
수십 년 후에야 법정에 섰고,
그 사이 피해자의 어머니는
하얀 스카프만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이건 정의가 아니다.
이건 연기된 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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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슬픔은 기록되지 않았다
7월 12일, 스레브레니차의 하늘은 흐리지 않았다.
하늘은 맑았고,
빛은 환했으며,
사람들은 줄지어 사라졌다.
우리는 이제야 그날을 기억하려 한다.
그러나 기억은 살아남은 자의 몫이 아니다.
죽은 자의 이름이 불리지 않으면
그날은 여전히 반복된다.
그래서 우리는 써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분노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날을
슬픔과 함께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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