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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11월 25일 (2025년), 영원한 현역을 보내며 ― 배우 이순재 선생님을 기억하는 일곱 장면


1. 새벽에 들려온 부고 ― 한 배우의 퇴장, 한 시대의 막

2025년 11월 25일 새벽, 뉴스 속보 한 줄이 조용히 떴다.
“현역 최고령 배우, 국민배우 이순재 별세.” 향년 91세.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70년 가까운 연기 인생과 한국 대중문화사의 한 축이 통째로 들어 있었다.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전쟁과 분단을 겪고, 서울로 내려와 공부를 하고, 다시 연극 무대 위로 올라섰던 한 사람의 생애가 마침표를 찍은 날이었다. 언론은 그를 “영원한 현역”, “국민 배우”, “문화예술계의 큰 별”이라고 불렀고, 대통령 또한 “세대를 아우른 국민 배우”라며 추모의 메시지를 남겼다.

빈소는 서울 송파구의 한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다는 소식이 뒤이어 전해졌고, 드라마와 예능, 연극, 영화에서 그와 함께했던 동료 배우들과 후배들, 그리고 수많은 시청자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저마다의 기억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아버지를 떠올렸고, 누군가는 〈허준〉의 스승 유의태를, 또 다른 누군가는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야동 순재’를 떠올렸다.

우리가 오늘 쓰려는 글은, 한 사람의 부고를 단순히 “추모합니다”라는 말로 덮지 않기 위해서다.
뉴스가 전해주는 건 사실이지만, 기억을 꿰어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일은 남은 이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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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회령에서 무대까지 ― 전쟁 세대를 통과한 ‘철학도’의 데뷔

이순재 선생님은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다. 해방과 전쟁, 피란의 시간을 통과해 대전과 서울에 정착했고, 서울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진학했다.
젊은 시절, 그는 원래 정치외교나 학문의 길을 꿈꾸기도 했다고 회고하지만, 결국 그를 끝까지 붙잡은 것은 ‘연기’였다. 서울대 연극반 활동을 하던 중 연극 〈지평선 너머〉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인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다. 이 작품이 1956년, 그의 공식적인 데뷔작으로 기록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젊은 시절의 전환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어느 날 로렌스 올리비에가 출연한 영화 〈햄릿〉을 보고 “아, 저게 인간의 삶을 무대 위에서 다루는 방식이구나”를 깨달았고, 그때부터 연기는 더 이상 취미가 아니라 인생을 걸어야 할 대상이 되었다고.
철학과에서 배운 사유 방식과 연극 무대에서 체감한 생생한 감정이 서로 섞이면서, 그는 점점 ‘생각하는 배우’의 길을 걸었다. 단지 대사를 잘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한 인물의 삶과 시대를 함께 고민하는 배우. 이 지점은 훗날 그가 남긴 온갖 명언과 연기 철학의 배경이 된다.

1960년대 초, 이순재 선생님은 KBS 1기 탤런트로 선발되며 본격적으로 브라운관에 진출한다.
라디오 드라마와 초기 TV 드라마를 오가며 연기하던 시절, 장비는 열악했고, 촬영 환경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매체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무대든 카메라든, 이야기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배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활동 영역을 넓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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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드라마와 영화 ― ‘대발이 아버지’에서 노년의 얼굴까지

연극에서 출발한 그는 곧 TV 드라마의 얼굴이 됐다. 1990년대 초반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 ‘대발이 아버지’ 역할을 맡으면서, 그는 말 그대로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는다. 이 캐릭터는 한국식 아버지의 전형 ― 권위적이고, 고집 세고, 그러나 가족을 향한 정이 깊은 ― 을 집약한 인물로, 지금까지도 대중이 떠올리는 대표적인 ‘아버지’ 얼굴 가운데 하나다.

사극에서도 그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1999년 방영된 드라마 〈허준〉에서 그는 허준의 스승 유의태로 등장해, 작품의 윤리적·정신적 축을 담당했다. 과묵하지만 예리한 눈빛, 단호한 말투 속에서 스승의 사랑과 엄격함이 동시에 묻어나는 연기는 많은 시청자에게 오래도록 남았다.
이후 〈이산〉에서는 손자 정조를 향해 애정과 냉혹함을 동시에 드러내는 영조를 연기했다. 젊은 시절의 폭군 이미지가 아닌, 노년에 이른 제왕의 고독과 불안, 권력 유지의 집착이 뒤섞인 복합적인 인물로 그려내며, 사극 연기의 또 다른 정점을 보여주었다.

영화 속 이순재 선생님의 얼굴은 또 다른 결을 보여준다. 2011년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 그는 노년의 사랑과 상실, 그리고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노부부의 모습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이후 〈덕구〉, 〈로망〉 같은 작품에서는 할아버지 역할이 단순한 ‘조연’이 아니라, 서사의 중심에서 이야기를 이끄는 주체임을 증명했다. 〈덕구〉 속에서 그는 손자를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노인의 모습을 통해, 노년의 불안과 존엄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했다.

이처럼 드라마와 영화 속 이순재 선생님은, ‘노인 역할’이 아니라 ‘하나의 인간’을 보여주는 배우였다. 그가 연기한 인물들은 대개 나이가 많았지만, 그 안에는 나이보다 먼저 오는 감정들이 있었다. 서운함, 분노, 책임감, 사랑, 자기 연민, 그리고 마지막 순간의 용기까지. 그래서 그의 노년 연기는 단지 “연륜 있는 배우의 안정감”이 아니라, 인간의 여러 얼굴이 압축된 무게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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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예능·교양·강단 ― 대중과 더 가까이 선 이순재 선생님

이순재 선생님이 젊은 세대에게 ‘친숙한 얼굴’이 된 데에는, 예능과 교양 프로그램의 역할도 크다. 특히 tvN 〈거침없이 하이킥〉과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본명 ‘이순재’로 등장하며, 스스로를 비트는 코믹 연기를 선보인 것은 결정적이었다.
엄격한 아버지, 카리스마 넘치는 왕 역할을 많이 맡아온 그가, 시트콤에서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휘말리며 “야동 순재” 같은 별명을 얻을 만큼 코미디의 중심에 서 있었다. 이 작품들을 통해 그는 10~20대 시청자에게도 “우리 세대의 배우”로 다시 태어났다.

예능 〈꽃보다 할배〉에서 보여준 모습은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스페인 등 낯선 여행지에서 짐을 들고 길을 찾고, 동료들을 챙기며 여행을 이끌어가던 이순재 선생님의 모습은, 노년을 “단지 보호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함께 움직이는 동행자”로 바라보게 했다. 이 프로그램에서 제작진이 건강을 염려하자, 그는 “나이 먹었다고 주저앉아 대우나 받으려는 것은 늙어 보이는 것이다”라며 스스로를 다잡는 말을 남겼다.

한편, 그는 대학 강단에서도 학생들을 만났다. 가천대학교 연기예술학과 석좌교수로 후배들을 가르치며, 연기는 기술보다 사고와 태도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강연에서 “연기는 나를 다 털어내고 평가받는 일이라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리고 정년이 없다”고 말하며, 자신의 직업 선택에 대해 “지금도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연기를 ‘평생 배울 수 있는 일’이자, ‘나이가 들어도 계속할 수 있는 일’로 정의했던 그의 태도는, 많은 후배와 학생들에게 큰 울림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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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인터뷰와 명언 ― “연기는 평생 해도 끝이 없다”

이순재 선생님은 생전에 수많은 인터뷰에서 연기와 삶에 대한 생각을 남겼다. 그 가운데 특히 자주 인용되는 말이 있다.
“연기라는 예술적 창조 행위는 평생 해도 끝이 없고, 완성이 없다.”

그에게 연기는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끝이 보이지 않는 공부였다. 2016년 한 인터뷰에서 그는 연기를 “오랜 시간 갈고닦아도 완성할 수 없는 보석”에 비유하며, 배우는 늘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나이가 들어도 스스로를 “아직 모자란 배우”라고 불렀다.

또한 그는 젊은 배우들에게 “준비하면 기회가 온다”는 말을 자주 했다.
행운처럼 보이는 순간들도 사실은 오랫동안 준비해 온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라는 뜻이다. 작품 선택 기준을 묻는 질문에는 “주연이냐 조연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작품이 던지는 질문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고 답했다.

그의 인생 철학은 ‘나이’에 대한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2014년 〈꽃보다 할배〉 촬영 당시, 이순재 선생님은 “나이 먹었다고 주저앉아 대우나 받으려는 것은 늙어 보이는 것이다. 한다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 우리 나이는 닥치면 닥치는 대로 살아야 한다. 내일 할 일이 있으니 오늘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 팔십이라는 것도 빨리 잊고 아직도 육십이구나 하며 산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은 요즈음 유행하는 ‘욜로’나 ‘워라밸’ 같은 가벼운 구호와는 결이 다르다.
귀엽게 나이 든 척하는 것도 아니고, 억지 긍정도 아니다.
그저 “지금 내 앞에 주어진 일을, 나이 탓하지 말고 제대로 해내자”라는 태도에 가깝다.
그래서 이 명언들은 젊은 세대에게도, 한참 인생을 건너온 세대에게도 동시에 유효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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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후배들과 동료들이 기억하는 ‘스승’의 얼굴

이순재 선생님이 떠난 뒤, 가장 먼저 공개된 것 가운데 하나는 후배 배우들의 추모 글이었다. 어떤 후배는 “인생의 참스승이었다”고 썼고, 또 다른 후배는 “함께 연기한 것이 내 인생 최고의 영광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현장에서 후배들에게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촬영장 지각, 대본 준비 부족, 연기에 대한 안일한 태도 등은 그가 가장 참기 힘들어하던 부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엄격함의 밑바닥에는 “이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마음이 있었다.

동료 배우들은 그를 “늘 공부하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대사를 모두 외워온 뒤에도, 현장에서 연출과 상의하며 장면의 의미를 다시 따져보고, 상대 배우의 감정선까지 함께 고민해 주던 사람이었다. 사극의 방대한 사료와 역사적 맥락을 직접 찾아보며 인물 해석에 집어넣었다는 일화도 여러 기사에서 반복해서 언급된다.

동시에, 그는 후배들의 새로운 시도에 대해서 “요즘 애들 참 대단하다”고 말하며 genuine하게 감탄하는 어른이기도 했다. 전혀 다른 방식의 연출, 다른 호흡과 톤을 요구하는 작품들 속에서도, 그는 “내가 모르는 게 더 많으니, 끝까지 배워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래서 이순재 선생님은 누군가에게는 엄한 스승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든든한 선배였으며, 누군가에게는 “나도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롤모델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의 부고를 들은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남기는 말은 결국 하나다.
“선생님과 함께한 시간은, 내 인생의 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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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우리가 이어받을 질문 ― 배우로, 인간으로 산다는 것

이제 묻게 된다.
이순재 선생님을 기리는 일이, 단지 그의 이름 앞에 “고(故)”자를 붙이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할까.

그는 생전에 “나의 길은 연기, 연기밖에 없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연기로 유명해졌고, 연기로 사랑받았고, 잠시 정치의 길을 걸었던 순간조차 “결국 나의 길은 연기”였다고 회고했다.
그 말은 단지 직업 선택에 관한 자부심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평생을 쓸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이었다고 볼 수 있다.

연기는 그에게, 살아 있는 인간의 이야기를 세상에 나누는 방식이었다. 누군가의 기쁨과 슬픔, 실패와 집착, 사랑과 미련을 대신 말해주는 사람. 그래서 그는 “연기가 현실이 아닌 것을 현실처럼 보이게 하는 거짓말”이라고 말하면서도, 그 거짓말이 결국 인간의 진실을 건드려야만 연기가 된다고 강조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이 질문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어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일을 통해 나는 어떤 인간을 보여주고 있는가.
이순재 선생님이 남긴 수많은 역할과 인터뷰, 웃음과 눈물, 그리고 노년의 단단한 얼굴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너는, 너의 일을 어떻게 대하고 있니?”
“너는, 네 삶을 어디까지 건 적이 있니?”

이 질문들 앞에서,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은 자연스럽게 이렇게 흘러나온다.

배우 이순재 선생님.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까지 단단할 수 있다는 것을
연기를 통해, 삶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무대와 카메라에서 잠시 벗어나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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