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독재와 공포의 섬, 도미니카공화국
20세기 중반의 도미니카공화국은 카리브 해의 작은 섬나라라기보다는, 한 사람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나라였다. 라파엘 트루히요. 그는 1930년 쿠데타로 집권한 뒤 약 30년 동안 권력을 쥐고 놓지 않았다. 선거는 형식적으로 존재했지만, 실제로는 군대와 비밀경찰, 친위조직을 동원한 폭력과 공포가 나라를 지배했다. 언론은 검열되었고, 반대파는 체포·고문·실종·암살의 공포 속에서 사라졌다.
이런 체제 아래서 여성도 예외일 수 없었다. 독재자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여성의 신체와 삶까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여겼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폭력과 강압에 노출되었다.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탄압은 종종 성폭력과 협박을 동반했고, 가정폭력 역시 ‘집안일’로 취급되어 국가의 관심 밖에 있었다.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에서의 폭력이 서로 겹쳐지면서, 여성들은 두 겹의 억압 속에서 살아야 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독재에 저항하는 행위는 곧 폭력의 위험을 감수한다는 뜻이었다. 특히 여성에게는, 체제에 저항하는 정치적 행동이 동시에 여성으로서의 몸을 겨냥한 폭력의 위험과 연결되곤 했다. 1960년 11월 25일에 벌어진 사건은 바로 그 교차점 위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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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비’라는 이름으로 불린 자매들
미라발 자매는 도미니카공화국 북부 시골 마을에서 자란 네 자매 가운데 세 명이다. 파트리아, 미네르바, 마리아 테레사. 이들은 평범한 농가의 딸로 태어났지만, 성장 과정에서 트루히요 정권의 폭력과 부패, 주변 사람들의 고통을 목격하며 점차 정치적 감수성을 키워 갔다. 특히 둘째 미네르바는 법학을 공부하며 독재 정권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태도를 보였고, 그 때문에 트루히요의 미움을 사기도 했다.
자매들은 비밀리에 반독재 조직에 가담했고, 무기와 문서를 전달하며 체제 전복을 준비하던 지하활동의 일원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서로와 동료들을 격려하기 위해 스스로를 “마리포사(Las Mariposas)”, 즉 ‘나비들’이라고 불렀다. 나비는 작고 연약해 보이지만, 그 날갯짓이 공기를 흔들고 계절을 알리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 별명에는 독재의 무거운 공기 속에서도 자유를 향해 움직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미라발 자매의 이야기는 단순한 ‘영웅 서사’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들은 활동가이면서 동시에 어머니이자 아내였고, 가족이었으며, 일상 생활을 꾸려 나가야 하는 한 인간이었다. 아이를 키우고 집을 지키는 일상과, 체제에 저항하는 비밀 활동이 겹쳐진 삶이었다. 그래서 이들의 선택은 “특별한 몇몇의 용기”를 넘어, 한 시대를 살아가던 수많은 여성들이 겪었던 긴장과 두려움, 갈등의 축소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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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960년 11월 25일, 위장된 사고와 진짜 범죄
1960년 11월 25일, 세 자매는 복역 중인 남편들을 면회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날 그들은 남편들이 수감된 산티아고 인근의 교도소를 방문한 뒤, 차를 타고 돌아가다가 비밀경찰에게 붙잡혔다. 이후 일어난 일에 대해, 정권은 “불의의 교통사고”라고 발표했다. 차가 산길에서 미끄러져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는 것이 공식 설명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자매들은 끌려가 구타와 폭력을 당한 뒤 목이 졸려 살해되었고, 그 시신은 자동차와 함께 절벽 아래로 밀려 떨어졌다. 철저히 계획된 암살이었고, 정권은 이를 “평범한 사고”로 위장하려 했다. 하지만 현장의 흔적과 주변 증언, 정권의 이전 행태를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는 전혀 설득력을 가지지 못했다. 누구나 알았다. 이 죽음은 트루히요가 반대자에게 보내는 경고였고, 동시에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한 연출이라는 것을.
그러나 이 날은 정권이 의도한 것과는 다른 결과를 낳았다. 미라발 자매의 죽음은 곧바로 도미니카 사회에서 분노와 슬픔을 불러일으켰고, 이들의 이름은 독재에 저항하는 상징이 되었다. 1961년 트루히요가 암살되고 그의 체제가 무너지기까지, 미라발 자매의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불씨 역할을 했다. 독재 권력은 세 사람을 제거함으로써 공포를 심으려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저항의 기억을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형태로 남겨 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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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거리에서 유엔까지, 11월 25일이 기념일이 되기까지
미라발 자매의 죽음은 도미니카공화국 내부를 넘어, 라틴아메리카 전체와 세계 여성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세상의 많은 여성들에게, 이 자매의 이야기는 “국가 폭력과 가부장적 폭력이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다”는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였다. 독재에 대한 정치적 폭압과, 여성에 대한 성적·신체적 폭력이 서로 얽혀 있다는 사실은, 이후 여성운동의 핵심 문제의식이 된다.
1981년,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 지역의 여성운동가들은 미라발 자매가 살해된 11월 25일을 **“여성에 대한 폭력에 맞서 싸우는 날”**로 기념하기로 결정했다. 이 날을 전후해 가정폭력, 성폭력, 국가에 의한 폭력에 대한 증언대회와 집회, 캠페인이 열리기 시작했다. 가부장제와 독재, 식민지 유산과 경제적 착취가 한꺼번에 얽혀 있는 현실 속에서, 여성폭력 문제는 더 이상 ‘사적인 문제’로 숨겨둘 수 없는 공적 의제가 되었다.
이 흐름은 결국 국제무대까지 이어졌다. 1993년 유엔은 「여성에 대한 폭력 철폐 선언」을 채택하며 여성폭력을 인권 침해로 명시했고, 1999년 12월, 유엔 총회는 결의 54/134를 통해 11월 25일을 공식적으로 **「세계 여성에 대한 폭력 추방의 날(International Day for the Elimination of Violence against Women)」**로 지정했다. 라틴아메리카의 거리에서 시작된 기억의 정치가, 마침내 국제기구의 언어와 제도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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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025년, 한국에서 다시 읽는 11월 25일의 의미
이제 1960년 11월 25일은 특정 국가의 비극적인 사건을 넘어,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는 현실을 상기시키는 날짜가 되었다.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스토킹, 직장 내 성희롱, 디지털 성범죄, 전시 성폭력, 페미사이드(여성 살해)까지, 여성에 대한 폭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통계와 뉴스 속 숫자로도 드러나지만, 그 숫자 사이에는 각자의 이름과 얼굴, 그리고 미라발 자매처럼 “살아남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겹쳐져 있다.
2025년 한국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수많은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위협과 폭력, 그리고 그 폭력을 축소하거나 무시하는 시선들은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다. 거리에서든, 온라인 공간에서든, 법정과 국회 안에서도,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는 쉽게 ‘과장된 이야기’ 혹은 ‘정치적 논쟁거리’로 치부되곤 한다. 그러나 11월 25일이라는 날짜는 말한다. 이 문제는 어느 한 나라, 어느 한 시대의 특수한 사건이 아니라, 구조와 문화 속에 깊이 박혀 있는 폭력의 얼굴이라는 것을.
미라발 자매의 이름은, 거창한 영웅담으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보여준 저항의 형태뿐 아니라, 그들이 죽음으로 증언하게 된 폭력의 구조를 직시하는 일이다. 11월 25일을 기억한다는 것은 곧, 여성의 몸과 삶을 둘러싼 폭력이 개인의 불운이나 사적인 비극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바꾸어야 할 구조적 문제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 자신의 언어와 선택, 제도와 문화 속에서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낼지 스스로에게 묻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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