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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2025년을 보내며》 1부. 정권은 교체되었지만, 선택은 미뤄졌다

 

1. 2024년 12월에서 시작된 붕괴 ― 정권 교체 이전에 무너진 신뢰

2025년의 한국 정치경제를 이해하려면 이 해를 출발점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이야기는 2024년 12월에서 시작된다. 당시 불거진 비상조치 논란과 정치적 충돌은 단순한 정국 불안이나 정책 실패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랜 기간 누적되어 온 통치 신뢰의 균열이 더 이상 기존의 정치적 언어와 절차로 관리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음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중요한 점은 이 균열이 즉각적인 체제 붕괴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한국 사회는 충돌을 거리와 대립의 형태로 분출시키는 대신, 이를 제도 내부의 검증 과정으로 밀어 넣는 방식을 택했다.

이후 수개월 동안 전개된 과정은 한국 정치의 구조적 특성을 분명히 보여준다. 국회는 책임을 묻는 절차를 가동했고, 사법기관은 통치 행위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 시기 정치는 결단보다는 유예를 선택했고, 사회는 분열보다는 관망의 태도를 보였다. 이는 성숙의 결과라기보다, 갈등을 감당할 여력이 줄어든 사회가 위험을 최소화하려 한 방어적 반응에 가까웠다. 정치적 충돌이 곧바로 경제 불안으로 번질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공유되었고, 그 결과 충돌은 가능한 한 제도 안에서 처리되어야 할 위험 요소로 받아들여졌다. 다시 말해, 2024년 말의 정치 위기는 처음부터 경제적 조건과 깊이 얽힌 사건이었다.

2025년 4월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이러한 흐름을 제도적으로 마무리한 계기였다. 이 결정은 특정 인물이나 정권의 실패를 선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존의 통치 방식이 더 이상 사회적 신뢰를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 방식은 혁명적 단절이 아니라 헌정 질서 내부에서의 정리였다. 권력은 축출되었지만 국가는 유지되었다. 이는 제도적 안정성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변화의 폭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음을 뜻한다. 급격한 전환은 애초에 선택지에 없었고, 가능한 것은 질서 있는 교체뿐이었다.

이 시점에서 정치보다 먼저 작동한 것은 여론이나 이념이 아니라 경제적 현실이었다. 2024년 말에서 2025년 초에 이르기까지 한국 경제는 이미 장기 저성장의 국면에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성장률은 둔화되었고 내수는 회복되지 않았으며, 가계부채와 부동산 문제는 정치적 개입이 곧 금융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는 민감한 상태였다. 이런 조건 속에서 정치적 불확실성은 단순한 권력 문제를 넘어 경제 전반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요소로 인식되었다. 기존 정권의 붕괴는 정치적 책임의 문제이자, 동시에 경제적 위험을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다는 사회적 판단이기도 했다.

결국 2024년 12월부터 2025년 4월까지의 시간은 정권 교체의 서사가 아니라, 기존 질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사회가 인정하고 그 붕괴를 최소한의 비용으로 정리하려 한 과정이었다. 이 시기 중요한 것은 누가 권력을 잡았는지가 아니라, 어떤 방식의 통치가 더 이상 허용되지 않게 되었는가였다. 강한 통치와 빠른 결단, 충돌을 감수하는 정치 방식은 이미 현실성을 상실하고 있었다. 2025년은 바로 이 조건 위에서 시작되었다. 정권 교체는 가능했지만, 정치의 방향 전환이 처음부터 쉽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2. 정권 교체 이전부터 굳어 있던 경제 조건 ― 움직일 수 없었던 국가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기 이전부터 한국 경제는 이미 쉽게 방향을 바꿀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는 단기간의 경기 변동이나 일시적 충격의 문제가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누적된 조건의 결과였다. 성장률은 수년째 낮은 수준에 머물렀고, 회복은 반복해서 지연되었다. 내수는 구조적으로 위축되어 있었으며, 소비를 떠받쳐야 할 가계는 높은 부채 부담 속에서 추가 지출 여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 상태에서 국가는 더 이상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자극하는’ 전통적인 정책 조합을 쉽게 꺼내 들 수 없었다.

가계부채와 부동산 문제는 이 제약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영역이었다. 주택 가격은 지역과 계층에 따라 엇갈린 모습을 보였지만, 전체적으로는 정치적 개입이 곧바로 금융 시장의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는 민감한 상태였다. 대출 규제를 완화하면 자산 가격과 부채가 동시에 자극될 위험이 있었고, 반대로 규제를 강화하면 이미 위축된 내수가 추가로 눌릴 가능성이 컸다. 어떤 선택도 비용이 명확했으며, 그 비용을 단기간에 상쇄할 수 있는 성장 동력은 보이지 않았다. 이 조건 속에서 부동산은 정책 수단이라기보다, 건드리기 어려운 위험 요소에 가까워졌다.

재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경기 둔화를 완화하기 위해 재정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는 분명했지만, 재정 여력에 대한 사회적 의심 또한 커져 있었다. 확장 재정은 필요했으나, 그것이 지속 가능하냐는 질문에는 쉽게 답할 수 없었다. 재정을 쓰는 순간 국가의 선택지는 오히려 더 좁아질 수 있었고, 이는 정치적 부담으로 곧바로 환원되었다. 재정은 더 이상 방향을 바꾸는 수단이 아니라, 시간을 버는 장치로 기능하고 있었다.

통화 정책 역시 자유롭지 않았다. 금리 인하의 필요성은 분명했지만, 환율과 금융 안정이라는 외부 변수는 항상 발목을 잡았다. 금리를 내리면 자본 이동과 환율 변동이 즉각 반응했고, 이는 물가와 금융 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결국 통화 정책은 명확한 신호를 주기보다는, 시장의 반응을 살피며 미세 조정하는 방식으로 운용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서도 중요한 것은 의지가 아니라 허용 범위였다.

수출은 상대적으로 나은 모습을 보였지만, 그것이 경제 전반의 활력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일부 산업의 회복은 분명 존재했으나, 이는 고용과 소비로 광범위하게 확산되지 않았다. 산업 구조의 편중은 경제의 회복을 숫자로는 보여주었지만, 사회적 체감으로 전환시키지는 못했다. 다시 말해, 수출은 버팀목이었지, 방향타는 아니었다.

이 모든 조건이 합쳐져 만들어낸 현실은 분명했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정책적 실험의 폭은 이미 좁아져 있었다. 과감한 개입은 곧바로 다른 영역의 불안을 자극했고, 소극적인 선택은 침체의 장기화를 불러왔다. 어느 쪽이든 정치적 부담은 컸고, 즉각적인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정권 교체 이전부터 한국 경제는 이미 **‘움직일 수는 있지만 크게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 들어가 있었다.

이 조건은 이후 등장할 정부의 성격을 미리 규정했다. 새 정부가 무엇을 하고 싶었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할 수 없었는가였다. 경제는 정치에 명확한 한계를 제시했고, 그 한계는 이후의 정책 언어와 선택을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규정했다.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기 전부터, 변화의 속도는 이미 정해져 있었던 셈이다.

 

3. 새 정부의 출범과 선택의 현실 ― 바꾸겠다고 말했지만, 관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2025년 6월, 이재명 정부는 헌정 절차에 따른 정권 교체라는 비교적 안정된 형식 속에서 출범했다. 선거 과정에서 제시된 메시지는 분명했다. 불평등의 완화, 경제 구조의 전환, 국가 역할의 회복. 그러나 출범 직후 국정의 실제 무대에서 마주한 현실은, 이 메시지들을 곧바로 정책으로 옮기기에는 지나치게 협소한 조건이었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국가가 서 있는 자리는 그대로였다. 새 정부의 첫 선택들은 그래서 개혁의 선언이 아니라, 우선순위의 재정렬에 가까웠다.

출범 직후 가장 먼저 다뤄진 의제는 방향 전환이 아니라 안정이었다. 정부는 경기 둔화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 확대와 금리 완화의 필요성을 인정했지만, 동시에 그 속도와 범위를 강하게 조절했다. 재정은 쓰되 구조를 흔들지 않는 방식으로 설계되었고, 통화 정책 역시 시장 반응을 예의주시하며 미세 조정에 머물렀다. 이는 새 정부가 개혁을 포기했기 때문이 아니라, 개혁의 충격이 어떤 경로로 번질지를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금융 시장, 환율, 부동산, 가계부채는 서로 촘촘히 얽혀 있었고, 어느 한 지점을 강하게 누르면 다른 영역에서 즉각적인 반작용이 나타나는 구조였다.

이 지점에서 새 정부의 선택은 흔히 ‘온건하다’거나 ‘소극적’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온건함이 목표였다기보다, 급진성을 감당할 수 없는 조건이 먼저 존재했다. 분배 정책을 강화하려면 재원이 필요했고, 재원을 확보하려면 증세나 구조 조정이 불가피했지만, 이는 곧바로 시장과 여론의 반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산업 정책 역시 마찬가지였다. 국가 주도의 대규모 전환을 추진하기에는 재정 여력과 사회적 합의가 모두 부족했다. 그 결과 정부의 정책 언어는 ‘전환’보다는 ‘단계적’, ‘개혁’보다는 ‘점진적’이라는 표현으로 정리되었다.

정치적으로도 상황은 단순하지 않았다. 새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전 정권을 둘러싼 사법 절차와 정치적 평가가 동시에 진행되는 국면을 관리해야 했다. 이는 과거를 정리하지 않고 미래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동시에 과거에 지나치게 매달릴 경우 국정의 동력이 소모될 위험도 안고 있었다. 이 딜레마 속에서 정부는 정치적 충돌을 최소화하면서 제도적 절차를 존중하는 방향을 택했다. 강한 정치적 제스처 대신, 사법적 판단과 국회의 절차가 앞서는 모습이 반복된 이유다. 새 정부는 주도적으로 갈등을 확대하기보다, 갈등이 제도 안에서 정리되기를 기다리는 위치에 서 있었다.

이러한 선택은 정부의 성격을 빠르게 규정했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전환의 정부’라기보다 ‘관리의 정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는 정책 의지의 결핍이라기보다, 정권 교체 시점에 이미 형성되어 있던 조건들이 정부의 행동 반경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무언가를 바꾸지 않아서 비판받았지만, 실제로는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바꾸지 않은 선택들을 연속적으로 쌓아가고 있었다.

결국 이 시기의 핵심은 ‘무엇을 했는가’보다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있다. 새 정부는 기존 질서에 균열이 있음을 알고 있었고, 그 균열을 봉합하지 않고서는 어떤 전환도 지속될 수 없다는 점 역시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출범 초기의 국정은 대담한 실험이 아니라, 충돌을 피하며 시간을 확보하는 데 집중되었다. 이 선택은 단기적으로는 안정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변화의 시점을 뒤로 미뤘다. 새 정부의 첫해는 그렇게 결단의 해라기보다, 유예의 해로 자리 잡았다.

 

 

4. 판단의 무대가 옮겨졌다 ― 사법부로 이동한 정치 갈등

2025년 한국 정치의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갈등의 무대가 국회나 거리보다 사법부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전 정권의 통치 행위에 대한 평가는 정치적 논쟁으로 끝나지 않고, 법적 판단의 영역으로 빠르게 옮겨갔다. 이는 사법부가 정치에 개입했다기보다, 정치가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판단의 책임을 사법으로 이전한 결과에 가까웠다. 정치적 책임과 법적 책임의 경계는 흐려졌고, 갈등은 결정의 문제가 아니라 해석의 문제로 재구성되었다.

이 이동은 정권 교체 직후의 조건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었다. 경제는 불안정했고, 사회는 피로했으며, 새 정부는 국정의 연속성을 유지해야 했다. 이 상황에서 정치가 과거를 둘러싼 책임을 강하게 규정하거나, 갈등을 전면화할 경우 그 비용은 즉각적으로 확산될 위험이 컸다. 정치적 충돌은 곧바로 경제 심리와 금융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고, 이는 국정 운영 전반을 흔들 수 있는 요소였다. 그 결과 정치의 언어는 결단보다 절차로 이동했다.

절차의 언어가 가장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공간이 사법부였다. 정치적 쟁점은 법률 위반 여부와 헌정 질서 침해 여부로 환원되었고, 판단은 법정으로 넘어갔다. 이 과정에서 사법부는 단순한 법 해석 기관을 넘어, 정치 질서를 임시로 봉합하는 역할을 떠안게 되었다. 이는 사법부의 적극성이라기보다, 정치가 책임을 분산시키는 과정에서 생긴 구조적 결과였다. 정치가 결정을 미루는 동안, 판단은 사법 절차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러한 변화는 비용을 남겼다. 정치는 결단의 주체로서의 위상을 약화시켰고, 사법부는 감당하기 어려운 정치적 기대를 떠안게 되었다. 법적 판단은 갈등을 정리할 수는 있었지만, 갈등을 해소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이 방식은 단기적으로 안정이라는 효과를 낳았다. 갈등은 폭발하지 않았고, 체제는 유지되었다. 2025년의 사법부 혼동은 그래서 일탈이 아니라, 불안을 관리하려는 정치경제 구조가 만들어낸 선택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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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조용했지만 가볍지 않았던 해 ― 선택을 미룬 대가

이 모든 흐름을 종합하면 2025년은 쉽게 정의하기 어려운 해로 남는다. 정권은 교체되었고, 제도는 작동했으며, 체제는 유지되었다. 격렬한 충돌도, 급격한 붕괴도 없었다. 표면적으로 보자면 안정의 해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 안정은 성취라기보다 유예의 결과였다. 변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변화의 비용을 감당하지 않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유지된 안정이었다.

2025년의 정치경제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문제를 관리하는 데 집중했다. 경제는 더 큰 충격을 견딜 여력이 없었고, 정치는 그 한계를 넘지 않으려 했다. 사법부는 정치가 떠안지 않은 부담을 흡수하며 질서를 봉합했다. 이 세 영역은 서로 충돌하지 않았고, 오히려 조심스럽게 맞물렸다. 그 결과 사회는 흔들리지 않았지만,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했다. 선택은 반복해서 미뤄졌고, 결정은 다음 시점으로 이월되었다.

이 해의 핵심은 무능이나 실패가 아니었다. 2025년의 특징은 의도적인 비결정에 있었다. 결정하지 않는 것이 가장 위험이 적은 선택으로 인식되었고, 정치와 제도는 그 선택을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그러나 유예에는 언제나 비용이 따른다. 구조 개혁은 늦춰졌고, 책임은 분산되었으며, 사회적 갈등은 해소되지 않은 채 잠복했다. 안정은 유지되었지만, 그 안정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그래서 2025년은 조용했지만 가볍지 않았다. 이 해는 위기를 넘긴 해였지만, 위기를 해결한 해는 아니었다. 오히려 해결을 미룬 대가가 축적된 시간에 가까웠다. 정권 교체는 이루어졌지만, 방향 전환은 시작되지 않았다. 사회는 파국을 피했지만, 다음 선택의 부담을 더 크게 안게 되었다.

2026년은 이 유예의 시간이 끝나는 지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질문들이 다시 정치와 경제의 전면으로 돌아올 것이다. 2025년은 그 질문을 준비한 해였다. 준비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질문이 무엇인지는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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