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660년 11월 28일, 한 저녁 모임에서 시작된 이야기
1660년 11월 28일, 런던 그레셤 칼리지에서 크리스토퍼 렌의 강연이 끝난 뒤, 몇몇 학자들이 남아 따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은 정치와 신학의 격렬한 논쟁에서 한 발 비켜난 곳에서, “자연 그 자체를 실험으로 탐구하는 모임”을 만들자고 합의한다. 이 느슨한 합의가 훗날 **영국 왕립학회(Royal Society)**로 굳어진다. 오늘날 왕립학회는 종종 “근대 과학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로 불린다. 학문이 더 이상 궁정의 후원이나 신학적 권위에만 기대지 않고, 실험·관찰·토론을 중심으로 서로의 생각을 검증하는 공동체로 처음 모습을 드러낸 날이 바로 이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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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Nullius in verba” ― 아무도 믿지 않겠다는 결의
왕립학회는 1662년 왕실로부터 첫 번째 칙허장을 받으면서 모토를 정한다. 라틴어 “Nullius in verba”, 직역하면 “그 누구의 말도 믿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문장은 그들이 신학자도, 철학자도, 왕의 말도 아닌 ‘사실’만을 근거로 논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즉, 진리는 권위자가 말해 준 문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시 해 볼 수 있는 실험과 관찰 속에 있다는 주장이다. 이 모토는 훗날 “증거 기반”이라는 과학의 핵심 태도를 선명한 문장 하나로 압축한 슬로건이 되었다. 영국 왕립학회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실험 장치라면, Nullius in verba는 그 장치의 최상단에 붙어 있는 안전 수칙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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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계 최초의 학술지, 그리고 ‘논문’이라는 형식의 탄생
1665년, 왕립학회의 초대 비서 헨리 올덴버그는 **『Philosophical Transactions』**라는 정기 간행물을 만들기 시작한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이 저널은 “세계 최초의 근대적 과학 학술지”로 평가된다. 그 안에는 실험 과정과 결과, 관찰 기록, 다른 학자들의 반론과 재반박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전에는 지식이 편지나 개인 노트, 혹은 책 한 권의 형태로 흩어져 있었다면, 이제는 공통된 형식의 보고서, 즉 논문으로 사회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현대 과학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실험 방법 – 결과 – 해석 – 참고문헌”**이라는 틀도 이 시기를 거치면서 천천히 모양을 갖춘다. 하나의 생각이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끝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눈과 손을 통과하면서 검증되는 구조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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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뉴턴과 리우벤후크 ― 보이지 않던 세계를 여는 눈
이 새로운 무대 위에 가장 먼저 올라온 얼굴들 가운데 하나가 아이작 뉴턴이다. 1672년, 뉴턴은 프리즘 실험을 바탕으로 “백색광은 여러 색이 섞인 것”이라는 주장을 담은 논문을 Philosophical Transactions에 발표한다. 그는 빛이 단순히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색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서로 굴절률이 다른 여러 색의 광선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이 논문은 광학 이론을 바꾸었을 뿐 아니라, 실험적 증거와 수학적 정교함, 그리고 다소 공격적인 논쟁 방식까지 결합하여, 오늘 우리가 익숙하게 여기는 “과학 논문”의 한 전형을 만들어 냈다.
같은 시기, 네덜란드 상인이자 아마추어 과학자였던 안톤 판 리우벤후크는 자신이 만든 현미경으로 빗물·우물물·후추를 우린 물 속에서 수많은 “작은 동물들”(animalcules)을 발견하고, 그 관찰을 편지 형식으로 왕립학회에 계속 보낸다. 왕립학회는 이를 검증해 Philosophical Transactions를 통해 발표하고, 그 결과 이 작은 존재들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박테리아와 원생생물의 첫 정식 기록이 된다. 한쪽에서는 뉴턴이 빛의 본질을 새로 쓰고, 다른 한쪽에서는 리우벤후크가 눈에 보이지 않던 미시 세계의 문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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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프랭클린, 캐번디시, 튜링 ― 우주와 패턴을 재는 실험들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이 저널에 실리는 실험의 스케일은 더 넓어진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번개가 전기와 같은 현상임을 보여 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비 오는 날 연과 금속 열쇠를 이용해 전기를 끌어오는 위험한 실험을 수행한다. 이 실험을 바탕으로 작성된 **「전기 연에 관하여(A Letter… concerning an Electrical Kite)」**는 Philosophical Transactions에 실려, 번개와 전기의 동일성을 입증한 상징적 문서가 된다. 한편 헨리 캐번디시는 거대한 납 덩어리와 섬세한 비틀림 저울을 이용해 지구가 끌어당기는 힘을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구의 평균 밀도를 계산해 논문으로 보고한다. 거대한 행성 전체를, 런던의 한 건물 방 안에 설치한 장치로 ‘무게를 재어 본’ 실험이었다.
20세기 중반에는 앨런 튜링이 Philosophical Transactions B에 「형태발생의 화학적 기초(The Chemical Basis of Morphogenesis)」를 발표한다. 이 논문은 동물의 얼룩이나 줄무늬 같은 패턴이 어떻게 생기는지를, 두 종류 이상의 물질이 서로 반응하고 퍼져 나가는 **“반응-확산 시스템”**으로 설명한다. 나중에 “튜링 패턴”으로 불리게 되는 이 아이디어는 발달생물학·이론생물학, 심지어 컴퓨터 그래픽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계보의 출발점이 된다. 한 저널 안에서 뉴턴의 프리즘, 프랭클린의 연, 캐번디시의 저울, 튜링의 방정식이 서로 다른 시대를 가로질러 나란히 서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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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위대한 실험”만이 아니라, 이상하고 불편한 이야기들까지
하지만 Philosophical Transactions가 언제나 장엄하고 위대한 발견만을 위한 무대였던 것은 아니다. 초창기 학회지에는 오늘의 눈으로 보면 다소 기묘하고 불편한 의학·인체 보고서들도 꽤 실려 있다. 갑작스러운 유방의 비정상적 부종을 겪은 젊은 여성의 사례처럼, 의사가 치수와 증상을 세세히 적어 보낸 기록, 당시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체중을 가진 남성의 신체 치수를 일일이 적은 보고 등이 그 예다. 이런 글들은 오늘날로 치면 인권 감수성이 매우 부족한 문서이지만, 동시에 “어떤 몸이 정상이고, 어떤 몸이 이상하다고 여겨졌는지”를 보여 주는 사회적 거울이기도 하다.
이처럼 왕립학회 저널은 “근대 과학의 위대한 발견”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느낀 모든 현상을 모아 둔 저장고였다. 눈에 보이지 않던 미생물, 천둥 속 전기, 지구의 무게, 동물의 얼룩무늬, 그리고 이상하다고 간주된 특정한 몸까지, 세상의 경계에 있는 것들이 이 저널의 지면에서 언어와 숫자, 그림과 그래프로 번역되었다. 과학사는 거창한 실험실 사진들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다소 어설프고 불완전한 관찰들의 층위 위에 차곡차곡 쌓인다는 사실을 왕립학회는 잘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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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오늘의 우리에게 남은 질문 ― “아무도 믿지 않는다”는 말의 진짜 의미
21세기인 오늘, 우리는 수많은 과학 저널과 논문, 그리고 그것을 요약해 전해 주는 기사와 SNS 포스트 사이에서 산다. 어떤 사람은 과학을 맹목적인 권위로 받아들이고, 또 어떤 사람은陰謀론과 가짜 정보를 과학보다 더 진실하게 느끼기도 한다. 이런 시대에 1660년의 작은 모임이 남긴 **“Nullius in verba”**라는 문장은 다시 생각해 볼 만한 질문을 던진다. 이 말은 사실 “아무도 믿지 말고, 증거를 함께 보자” 는 제안에 가깝다. 누군가의 말이나 지위를 믿지 않는 대신, 실험과 관찰, 데이터와 공개 토론을 통해 함께 검증 가능한 진실을 만들자는 약속이다.
영국 왕립학회의 탄생을 기억하는 11월 28일은 그래서 “위대한 과학자들을 찬양하는 날”로만 남아서는 아쉽다. 오히려 이 날은 우리 각자가 내가 믿는 사실을 어디에서, 어떻게 확인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뉴턴과 리우벤후크, 프랭클린과 캐번디시, 튜링이 남긴 것은 완성된 답이라기보다는, **“의심하면서도 함께 확인하는 법”**에 가까웠다. 역사 속 한 저널의 지면 위에서 시작된 그 습관이, 오늘 우리의 뉴스 피드와 과학 기사, 그리고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도 조금씩 이어질 수 있을지, 그 물음 자체가 11월 28일이 던지는 가장 현대적인 유산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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