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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11월 27일 (1095년), ‘신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전쟁 ― 클레르몽과 십자군,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남은 질문


1. 클레르몽, 한 편의 설교가 전쟁으로 바뀌던 날

1095년 11월 27일, 프랑스 중부의 작은 도시 클레르몽에는 유럽 전역에서 모여든 성직자와 귀족, 기사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교황 우르바노 2세가 소집한 공의회, 일종의 대형 회의 자리였다. 표면적인 안건은 교회 개혁과 내부 질서 정비였지만, 그날 마지막을 장식한 연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유럽의 역사를 틀어버렸다. 비잔틴 제국 황제 알렉시우스 1세 콤네노스는 이미 그 전에 여러 차례 서방 교황청에 원군을 요청하고 있었다. 소아시아 지역에서 셀주크 튀르크 세력이 급속도로 확장하면서, 예전 동로마의 중심 지역들이 잇달아 함락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거대한 구원군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 용병에 가까운 규모의 군사적 지원을 바랐다. 하지만 우르바노 2세가 이 요청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전혀 다른 차원에 있었다.


우르바노 2세는 클레르몽에서 모인 군중에게 예루살렘의 상황을 이야기했다고 전해진다. 성지 예루살렘이 이슬람 세력의 손아귀에 떨어졌고, 거룩한 장소들이 모독당하고 있으며, 그곳에 사는 그리스도인 형제자매들이 끔찍한 박해를 받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실제 상황이 어느 정도 과장되었는지, 어떤 부분이 정치적 선전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이 연설을 통해 단순한 군사 지원 요청을 “신이 원하시는 거룩한 전쟁”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틀 안에 집어넣었다는 점이다. 그는 예루살렘을 향해 무장한 순례의 길을 떠날 것을 호소했고, 그 길에 동참하는 자들에게 죄의 사함, 곧 구원의 특전을 약속했다. 군중 속에서는 “Deus vult(데우스 불트, 신이 그것을 원하신다)”라는 구호가 터져 나왔다고 전해진다. 이 라틴어 구호는 곧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며, 수십만 명의 사람들을 무장 순례라는 이름의 전쟁으로 밀어 넣는 마법의 주문처럼 쓰였다. 한 편의 설교가 사람들 머릿속에서 ‘성지 회복’이라는 거룩한 이미지와 ‘무장 원정’이라는 폭력적 현실을 결합시키는 순간이었다. 1095년 11월 27일은 그렇게, 제1차 십자군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흐름이 역사적으로 “시작되었다”고 기록되는 출발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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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평화를 약속하며 폭력을 수출한 교회

당시 서유럽의 현실을 보면, 우르바노 2세의 선택이 단지 종교적인 열정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11세기 말 유럽은 봉건 제후들과 기사들 사이의 사적 전쟁, 영토 분쟁, 복수혈전이 끊이지 않았다. 영주의 성과 성 사이에서는 크고 작은 충돌이 이어졌고, 농민들은 전쟁을 감당할 여력도 없이 약탈과 동원 사이를 오갔다. 교회는 오랫동안 이러한 폭력을 제어하기 위해 ‘신의 평화(Pax Dei)’, ‘하느님의 휴전(Treuga Dei)’ 같은 제도를 도입하며, 특정 요일이나 종교적 기간에는 전쟁을 중단하라고 호소해 왔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것은 자주 무시되었고, 기사들의 칼날은 여전히 같은 기독교인을 향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우르바노 2세가 택한 전략은, 내부의 폭력을 외부로 향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유럽 내부에서 서로 싸우던 기사들에게 “진짜 싸워야 할 적은 성지 예루살렘을 차지한 이교도들”이라고 방향을 바꾸어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그 싸움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했다. 성지 회복을 위해 싸우는 것은 더 이상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죄를 씻고 구원을 얻는 길로 제시되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전쟁이 ‘죄를 짓는 행위’가 아니라,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는 오히려 ‘죄를 씻는 행위’가 된다는 논리 구조였다. 이것이 바로 십자군이 만들어낸 새로운 개념, ‘거룩한 전쟁’ 또는 ‘성전’의 사고방식이다.


이런 의미에서 십자군 전쟁은 전쟁의 도덕적 지위를 완전히 바꾸어 버린 사건이었다. 이전까지 전쟁은 부득이하게 벌어지는 세속적인 행위, 가능한 한 억제해야 할 폭력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었다면, 이제 특정한 종류의 폭력은 오히려 신의 이름으로 칭찬받고 보상받는 일이 되었다. 이 발상의 전환이 무서운 이유는, 그 이후로 “신의 이름으로 하는 전쟁”이라는 구호가 수세기 동안 반복해서 소환된다는 점이다.

교회 입장에서 보면, 십자군은 내부 질서를 잡는 데도 도움이 되는 도구였다. 유럽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키던 기사들이, 칼과 말을 가지고 멀리 동방으로 떠나 준다면, 서유럽 내부의 충돌은 어느 정도 줄어들 수 있었다. 동시에 교황청은 그들을 조직하고 허가하는 중심 기관으로서 정치적·종교적 권위를 강화할 수 있었다. 결국 “형제를 돕고 성지를 지키자”는 말은, “유럽 내부의 폭력을 바깥으로 수출하자”는 정치적 계산과 섞여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경건한 언어와 계산된 전략이 뒤엉켜 있었던 것이 십자군의 출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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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지 탈환의 꿈과 피로 물든 길

그러나 클레르몽의 연설에서 약속된 거룩한 순례와, 실제로 벌어진 십자군의 현실은 거리가 멀었다. 성지로 향한 길은 처음부터 폭력으로 얼룩졌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제대로 된 훈련과 준비도 갖추지 못한 민중 십자군이었다. 설교에 감동한 농민과 도시 빈민, 하급 성직자들이 무리를 이루어 동유럽과 소아시아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종종 자신의 주변에 있는 약자를 향해 폭력을 행사했다. 특히 라인강 일대의 유대인 공동체들이 십자군의 분풀이 대상이 되었다. “예루살렘의 이교도를 치기 전에, 우리 곁의 그리스도 살해자를 정리해야 한다”는 식의 왜곡된 논리가 동원되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하고 강제 개종을 강요받았다. 성지로 향하는 여행은 이미 떠나기도 전에 누군가에게는 재앙이었다.

후에 도착한 정규 귀족군, 곧 우리가 “제1차 십자군”이라고 부르는 군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군사적 측면에서 보면, 십자군은 여러 번의 패배와 기적에 가까운 승리를 반복하며 결국 안티오키아와 예루살렘을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1099년 예루살렘 함락은 겉으로 보면 클레르몽 연설에서 말한 목표의 달성을 의미했다. 하지만 예루살렘을 점령한 뒤 십자군이 저지른 행위는, 오늘 우리의 눈으로 보면 명백한 학살과 전쟁 범죄에 해당한다.


당시 연대기에 따르면, 성 안에 남아 있던 무슬림과 유대인, 심지어 일부 동방 그리스도인들까지도 구별 없이 살해되었다고 기록된다. 어떤 기록은 성전 산에서 무릎까지 차오르는 피를 묘사하며 승리를 찬양하지만, 그 묘사는 동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리와 사원에서 쓰러져야 했는지를 증언한다. “신의 이름으로 칼을 들면, 사람을 죽이면서도 자신이 거룩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게 된다”는 사실이 가장 잔혹하게 드러난 순간이었다.

십자군 전쟁은 단지 전투 중인 병사들만 희생시킨 것이 아니라, 도시와 농촌의 민간인들을 광범위하게 파괴했다. 전쟁이 이동할 때마다 땅은 불타고 곡식은 약탈되었으며, 현지인들은 강제로 노동이나 보급에 동원되었다. 게다가 유럽에서 떠난 이들의 빈자리는 그들의 가족에게는 곧 경제적 파탄과 불안이었다. 일부는 영광과 약탈품을 꿈꾸고 떠났지만,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더 많았다. 남겨진 이들을 위한 복지나 보상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던 시대에, 그 후유증은 오랫동안 개인과 지역 공동체를 괴롭히는 상처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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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십자군 이후, 끝나지 않는 성전의 언어와 마녀사냥의 시대

십자군 전쟁은 몇 차례의 원정과 실패, 부분적인 점령과 후퇴를 반복하며 약 2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서유럽과 비잔틴, 이슬람 세계 사이의 정치적 균형과 경제 구조는 크게 변했다. 십자군 덕분에 동서 교역이 활성화되고 도시 경제가 발달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런 경제사적 분석만으로는 십자군이 남긴 상처를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십자군이 남긴 “성전의 언어”, 곧 신의 뜻을 빌려 폭력을 정당화하는 사고방식이다. 이 언어는 십자군이 끝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다양한 다른 형태로 이어졌다.

십자군이 동방의 이교도와 싸우는 거룩한 전쟁으로 규정되었다면, 이후 몇 세기에 걸쳐 유럽 내부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성전’이 벌어진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마녀사냥이다. 15~17세기에 집중적으로 나타난 마녀사냥은, 겉으로는 악마와의 결탁을 단죄한다는 종교적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실제로 그 표적이 된 이들은 대개 가난한 여성, 사회적 약자, 관습과 다른 삶을 살던 사람들, 지역사회에서 애매한 위치에 있던 이들이었다.


마녀사냥 재판에서 사용된 언어는 십자군 당시의 설교와 닮은 점이 많다. 공동체가 위협받고 있으며, 악마적 존재가 우리 안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그들을 색출해 제거하는 것이 신과 공동체를 위한 의무라는 논리 구조다. 십자군이 “멀리 있는 이교도”를 향한 성전이었다면, 마녀사냥은 “우리 곁의 위험한 타자”를 공격하는 성전이었다. 대상이 다를 뿐, 폭력을 정당화하는 구조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이렇게 보면 십자군 전쟁은 단지 중세 한 시기의 전쟁이 아니라, 서구 기독교 세계가 폭력을 조직하고 정당화하는 방식의 한 모델을 제공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신의 이름으로 칼을 들 수 있다는 선례, 집단이 자신을 위협하는 타자를 상상하고 그것을 제거하는 일을 ‘거룩한 의무’로 만들어 버리는 사고방식이 강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유럽 내부에서는 이단 심문과 마녀사냥이 벌어졌고, 유럽 밖에서는 식민지 확장과 원주민 학살이 또 다른 이름의 십자군처럼 진행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십자군은 끝난 게 아니라, 형태를 바꾸어 이어져 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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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오늘날 묻는 질문, ‘신의 전쟁’을 다시 말할 수 있을까

오늘 우리는 1095년 클레르몽에서 울려 퍼졌던 “Deus vult, 신이 그것을 원하신다”라는 구호를,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 배운다. 하지만 그 언어는 놀랍도록 현대에도 익숙하게 반복된다. 신의 이름으로, 혹은 민족, 국가, 문명, 이념의 이름으로 전쟁을 정당화하는 말들은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사용된다. 어떤 이들은 새로운 십자군을 부르짖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상대를 또 다른 ‘악마’나 ‘이교도’로 규정한다. 전쟁은 이제 종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경제·정체성의 문제와 결합해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십자군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은 구조를 볼 때가 많다.

종교가 본질적으로 폭력적인가라는 질문은 지나치게 단순할 수 있다. 역사에는 믿음을 이유로 폭력을 행사한 사례만큼이나, 믿음을 이유로 폭력을 거부하고 평화를 선택한 이들의 이야기도 존재한다. 문제는 신앙 그 자체라기보다는, 권력과 욕망이 신앙의 언어를 빌려올 때 생기는 왜곡이다. 십자군 전쟁은 그 왜곡의 가장 극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다. 전쟁을 미화하고, 폭력을 신성화하고, 타인을 향한 잔혹함에 죄책감 대신 구원의 약속을 부여한 사건이었다.


마녀사냥 역시 마찬가지다. 집단이 불안을 느낄 때, 그 불안을 줄이기 위해 희생양을 찾고, 그 희생양에게 악마와 불순종, 위험이라는 이름을 붙인 뒤 제거하는 행위는, 결국 폭력을 통해 안정을 되찾으려는 시도였다. 십자군이든 마녀사냥이든, 그 중심에는 “우리는 옳고, 저들은 악하다”라는 단순한 구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폭력이 일단 시작되면, 내부 비판과 토론의 자리는 줄어들고, 의심하는 목소리마저 “배신”이나 “불신앙”으로 몰리기 쉽다. 이것이 성전의 언어가 가진 가장 큰 위험이다. 일단 “신이 원하신다”라는 말이 선언되면, 그 이후에 남는 것은 복종과 적대뿐이기 쉽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더 이상 1095년의 유럽처럼 정보에 갇힌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우리는 십자군 연대기뿐만 아니라, 그 반대편에 서 있던 이들의 기록, 고고학과 사회사 연구, 인권과 평화 연구의 성과들을 함께 읽을 수 있다. 마녀사냥의 재판 기록과 그 피해자들의 삶을 재구성한 연구도 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의 이름으로”라는 말이 등장할 때, 우리는 그 뒤에 어떤 이해관계와 두려움, 욕망과 정치적 의도가 숨겨져 있는지 조금 더 냉정하게 살필 수 있어야 한다.


1095년 11월 27일, 클레르몽의 언덕에서 울려 퍼진 설교는 수십만 명의 발걸음을 움직여 전쟁터로 향하게 만들었다. 이제 같은 날짜를 기억하는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릴 수 있어야 한다. 전쟁을 ‘거룩하게’ 만들지 않는 것, 폭력을 신성화하는 언어를 의심하는 것, 종교든 이념이든 어떤 이름으로든 타자를 악마화하는 말에 쉽게 동조하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십자군과 마녀사냥의 역사를 배운 우리가, 아주 늦게나마 과거에게 돌려줄 수 있는 최소한의 응답일지 모른다.

우리는 더 이상 “Deus vult”라는 구호를 외칠 필요가 없다. 대신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신의 이름이 아니라, 인간의 책임으로 평화를 선택하자.” 전쟁과 폭력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시대를 살고 있다면, 그만큼 더 조심스럽게 말하고, 더 느리게 분노하며, 더 많이 의심해야 한다. 역사의 비극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적어도 말과 생각의 수준에서부터 십자군의 유령과 결별하자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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