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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스타일/패션과의 대화

🌙 기억의 감각 시리즈 10

10화 셔츠에 남은 체온


그날 새벽,
그녀는 아주 조용히 움직였다.
마치 잠든 시간을 깨우지 않으려는 고양이처럼—
발뒤꿈치를 세운 채, 커튼 뒤로 스며드는 빛을 확인하듯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나는 모른 척, 누운 채로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가고 있었다.
창문을 반쯤 연 그녀의 옆모습은
여름의 끝자락과 가을의 입구 사이,
그 무언가였다. 투명한데, 아득했다.

그녀는 얇은 셔츠 하나를 입고 있었다.
어젯밤 내가 건네준,
너무 커서 그녀의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흰색 셔츠.

단추는 허리까지만 잠가져 있었고,
안에는 나시가 그대로 비쳐 보였다.
햇빛은 아직 차지 않았지만,
그녀의 피부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입고 있어요, 그거.”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눈을 맞추지 않았다.
그 말은 나에게 한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셔츠에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셔츠의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마치 무언가를 정리하듯.
그리고 셔츠를 벗어 의자 등받이에 걸었다.

“잘 어울리더라구요.”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그 말엔 웃음도, 눈물도 없었지만
나는 문득 숨이 가빴다.
그건 인사였다. 이별의 인사.

그녀는 가방도 들지 않았다.
단지 핸드폰 하나를 손에 쥐고,
뒷모습을 보이며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끝내 뒤돌아보지 않았다.

문이 닫힌 후,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침대 옆 의자 위에 셔츠가 걸려 있었다.
팔 하나가 허공에 떨어져 있었고,
그 끝은 바닥까지 닿아 있었다.

나는 셔츠를 손에 들었다.
아직 그녀의 체온이 남아 있었다.
그 셔츠는 따뜻하지 않았지만, 차갑지도 않았다.
그건 어쩌면 우리가 사랑했던 시간의 정확한 온도였다.

코끝을 파고드는 익숙한 향기.
섬유유연제와 그녀의 살냄새.
그리고 아주 잠깐,
그녀가 내게 등을 돌리던 순간의 숨결까지도—

모두 셔츠 안에 남아 있었다.

나는 셔츠를 껴안고 앉았다.
바보처럼. 아무 말도 못하고, 아무것도 되돌리지 못한 채.
이별은 그렇게, 옷 하나로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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