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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스타일/패션과의 대화

🌧️ 기억의 감각 시리즈 04

04. 비에 젖은 셔츠 자락


– 말하지 못한 이별의 징후 –

“오늘은, 그냥 우산 없이 걷고 싶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하늘은 회색이었고, 공기는 이미 젖어 있었다.
그 말을 꺼내던 목소리는 다소 작았고,
나는 그 말에 반쯤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비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나란히 걸었다.
서점에서 나온 뒤, 목적지 없이 천천히 골목을 돌았다.
나는 오른손에 접힌 우산을 들고 있었고,
그녀는 두 손을 셔츠 주머니에 넣은 채, 어깨를 약간 움츠리고 있었다.

그날 그녀가 입고 있던 셔츠는 하늘빛이었다.
얇고, 물기를 머금으면 금세 피부에 달라붙을 것 같은 감촉.
비가 옷자락에 스며들 때마다,
그 셔츠는 그녀의 몸을 따라 조용히 모양을 바꾸었다.

비가 점점 굵어지면서, 셔츠의 자락은 허벅지 위쪽까지 젖어 올라갔다.
소매도, 어깨도, 등 뒤도
점차 짙은 색으로 물들어갔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우산을 펼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펼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녀가 그렇게 걷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에.
나는 그저 옆에서 걸으며
그녀의 젖은 옷자락을 바라봤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건 작별 인사였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미 서로의 마음속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비가 내리는 날의 이별은 유독 말이 없다.
말을 덧붙이면, 그 말이 비에 섞여 흘러가 버릴까 봐.
혹은 그 말을 들으면, 울음이 섞일까 봐.

우리는 그날 그렇게 걷기만 했다.
그녀의 셔츠는 바람에 따라 다르게 젖었고,
나는 그 자락에 남은 물기들이
아마도 그녀의 마지막 말이었을 거라 믿는다.

돌아오는 길,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셔츠의 단추를 두어 개 풀었다.
젖은 옷이 답답했을 것이다.
나는 집 앞까지 바래다주며, 끝내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녀는 문 앞에서
“조심히 가요.” 라고 짧게 말하고 돌아섰다.

그 순간,
내 손에 들려 있던 우산에,
비가 처음으로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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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시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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