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의 스타일/패션과의 대화

🌿 기억의 감각 시리즈 03


03. 빨지 못한 셔츠의 냄새


– 그리움과 미련이 스며든 밤 –

밤이 이렇게 조용했던 적이 있었던가.
창밖의 소음도, 냉장고의 진동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밤이었다.

나는 침대 끝에 앉아, 벽에 걸린 셔츠를 바라봤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입고 간 옷.
정확히 말하면,
입고 나가지 않고,
벗어둔 채로 사라진 옷이었다.

크림색 린넨 셔츠.
소매는 반쯤 접혀 있었고,
단추 하나는 풀린 채였다.
왼쪽 어깨엔 그녀가 메고 다니던 가방 끈의 흔적처럼
미세한 눌림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그날 아무 말 없이 다녀갔고,
나는 아무 말 없이 셔츠를 걸어두었다.

빨아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아직 그녀의 향기가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셔츠를 손에 들어
얼굴 가까이 가져갔다.
한 번도 맡아본 적 없지만
익숙한 냄새.
그녀가 나를 바라볼 때 풍기던 공기.
햇볕과 섬유유연제와,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체온.

그건, 냄새라기보다는
감정에 가까웠다.
그녀가 나를 안아줄 때
내 어깨 위로 남겨지던 부드러운 감촉.
가까이 있을수록 더 멀어지던 순간.
그 모든 것들이 이 셔츠에 접혀 있었다.


나는 셔츠를 그대로 끌어안고
방 안을 천천히 걸었다.
그녀가 이 방을 지나갔던 동선 그대로.
창가 앞에서 머물고,
거울 앞에서 고개를 갸웃했던 그 위치에 잠시 멈췄다.
그녀는 그날도 말이 없었다.
하지만 나도 묻지 않았다.

그 셔츠를 입어볼까,
잠시 고민했다.
그러면 그녀의 체온이 조금 더 가까이 느껴질까 싶어서.
그러나 나는 입지 않았다.
그녀의 모양대로 접힌 옷을,
내 몸으로 다시 구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떠난 지 일주일째 되는 밤이었다.
냄새는 조금 옅어졌고,
구김은 더 깊어져 있었다.

나는 다시 셔츠를 벽에 걸었다.
그 옆에 아무것도 걸지 않았다.
그 자리는 여전히 그녀의 것이다.
그녀는 떠났지만,
이 방은 아직 이별하지 못했다.

내가 그 셔츠를 빨게 되는 날이 오면,
그날은 아마도 진짜 이별의 날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아직은—
그녀의 냄새가,
그녀의 감정이,
내 하루 끝에 남아 있기 때문에.




🔖 해시태그

#크림린넨셔츠 #그녀의냄새 #빨지못한셔츠 #이별의방 #감정의잔향 #린넨셔츠 #그리움의밤 #감성공간 #셔츠속기억 #말없는작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