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체비평/기타

신인감독 김연경 5부 — 언더독 다섯 얼굴

화면이 꺼지고도 남는 사람들



---

구솔 — 조용한 손끝이 팀의 시간을 돌려놓는다

새벽 체육관은 말을 삼킨다. 구솔은 가장 먼저 불이 켜지는 쪽으로 걸어가 손가락에 테이프를 감는다. 테이프의 끝을 눌러 고정하는 짧은 호흡이 루틴을 시작하게 한다. 누가 보지 않아도 그는 같은 길이를, 같은 순서를 지킨다. 손끝이 흔들리면 팀의 시간이 흔들린다는 걸 오래전에 배웠기 때문이다.

훈련이 빡빡한 날엔 코트 중앙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모두를 본다. 누가 조금 빠르고 누가 반 박자 늦는지, 누가 오늘은 짧게 떨어지고 누가 높이 서 있는지. 세터는 가끔 말보다 시선을 길게 써야 한다. 더 많이 외치지 않고도, 더 정확히 이해시키는 법을 그는 몸으로 채워왔다.

경기가 빡세게 밀릴 때면 손끝이 먼저 차분해진다. 힘을 주기보다 시간을 늘린다. 높이가 떨어질 때는 궤적을 크게, 과열될 때는 반 템포 늦게. 스코어는 전광판에 남지만, 팀이 다시 숨 쉬게 되는 순간은 화면에 오래 잡히지 않는다. 그 보이지 않는 순간을 구솔은 책임진다.

가끔은 자신이 빛나야 한다는 유혹도 온다. 그러나 그는 ‘좋은 세트’가 아니라 ‘다음 공격을 쉬워지게 하는 세트’를 고른다. 이름을 남기기보다 동료의 이름을 크게 만드는 쪽을 택한다. 포인트가 터져 관중이 환호할 때, 그는 이미 다음 공의 위치를 생각하며 뒤로 물러선다.

연습이 끝나면 작은 노트에 두세 줄을 적는다. “2세트 18–18, 사이드 속도 과열. 미들 먼저.” 기분을 쓰지 않고 현상만 적는 방식은 그를 지켜주는 버팀목이 되었다. 감정은 파도처럼 왔다가 가지만, 기록은 방향을 잃지 않는다.

종종 그는 라커 거울 앞에서 테이프 자국을 잠깐 본다. 사라졌다가도 다시 생기는 희미한 흰 선. 세터로 산다는 건, 자신을 가장 덜 보이는 자리로 옮겨가는 일이란 사실을 그 선이 말해준다. 팀이 미세하게 흔들릴수록, 그의 존재는 더 분명해진다. 누군가의 박자를 빌려 팀의 박자를 되찾는 사람. 그 역할이 오늘도 조용히 완성된다.

해시태그
#구솔 #세터 #손끝의리듬 #팀의시간 #루틴 #조용한리더십 #필승원더독스 #신인감독김연경





---

김나희 — 먼저 몸을 낮추고, 마음을 먼저 다독인다

김나희는 늘 남들보다 조금 일찍 무릎을 굽힌다. 낮은 자세는 단지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내가 먼저 낮아질게, 그러니 너는 마음을 높여.’ 코트에서 그가 가장 자주 건네는 말 없는 문장이다.

경험이 길어질수록 말은 줄었다. 그 대신 손의 각도와 발의 위치가 말을 대신한다. 리시브 라인이 흔들리면 손바닥으로 공기의 높이를 가리키고, 세터 쪽으로 시선을 보낸다. 한 박자 늦게 닫힌 블록 앞에서는 어깨를 톡 건드린다. “괜찮아. 다음엔 이만큼만.” 이 짧은 제스처가 팀의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시킨다.

경기가 끝난 밤, 복도 의자에 앉아 얼음팩을 무릎에 얹는다. 뜨겁고 차가운 것이 동시에 스며드는 느낌이 하루의 끝을 알려준다. 휴대폰을 열어 팀 단톡방을 훑고, 막 입단한 후배가 남긴 질문을 천천히 읽는다. 답장은 길지 않다. “내일 첫 10분만 같이 하자.”

이름이 크게 불리던 시절도 있었고, 스포트라이트에서 멀어졌던 시간도 있었다. 그는 어느 쪽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법을 익혔다. 기록으로 설명되지 않는 오래된 버팀목이 사람을 지킨다. 미들이라는 포지션은 ‘높이’로 평가받지만, 그가 오래 가져온 가치는 ‘균형’에 가깝다. 순간의 승부보다 흐름의 정리를 택하는 마음.

벤치에 앉아 있을 때도 그는 코트의 간격만 본다. 빈 자리, 막힌 길, 느슨해진 호흡. 사람이 먼저 보이고, 그 다음에 공이 보인다. 그래서 그의 조언은 기술서보다 생활에 가깝다. 잘 먹고, 잘 자고, 약속한 시간에 오고, 먼저 인사하고. 그런 것들이 결국 공을 맞추는 데 가장 중요하다는 걸 그는 체득했다.

다음 날 아침, 그가 먼저 코트에 들어와 바닥을 손으로 쓸어본다. 어제 남은 먼지와 오늘 시작될 발자국 사이에, ‘다시’라는 단어가 놓인다. 경기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일은 없다. 다만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난다. 김나희가 하는 일은 바로 그 한 사람을 더 만드는 것이다.

해시태그
#김나희 #미들블로커 #먼저낮아지는사람 #균형 #생활의리듬 #멘토링 #필승원더독스 #신인감독김연경






---

표승주 — 유니폼을 벗은 뒤에도 팀은 남는다

표승주는 이제 스파이크 폼보다 호흡을 먼저 본다. 하이라이트를 만들던 팔과 손은, 지금은 허들 한가운데에서 ‘손바닥을 아래로 내리는 제스처’로 변했다. 들뜸을 낮추는 손. 그 손을 보고 사람들의 눈이 맞춰진다.

선수에서 해설자로, 다시 현장 리더로. 역할이 바뀔 때마다 그는 언어의 자리와 침묵의 자리를 나눴다. 경기장에선 짧게 말하고, 방송에선 길게 설명한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다. 언제나 ‘우리’라는 단어로 문장을 시작한다는 것. 팀이 무너지지 않도록, 개인의 감정이 지나치게 커지지 않도록, 말의 온도를 조절한다.

실수 직후 누구보다 먼저 벤치 끝으로 걸어가 수건을 건넨다. 큰 위로보다 작은 동작이 빠르다. “괜찮아”란 말도 필요 없을 때가 있다. 같은 곳을 두 번 바라보게 하는 눈빛이면 충분하다. 주장은 가끔 경기보다 사람을 먼저 이긴다.

그는 후배들에게 ‘골라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구분해준다. 잘 보이는 칭찬보다 오래가는 습관, 한 번의 감정보다 매일의 루틴, 들끓는 흥분보다 다음 포지션. 오늘의 이김이 내일의 해로움이 되지 않게, 표승주는 스코어가 아닌 기준을 말한다.

경기 끝나고 라커를 정리하다가도 그는 유니폼 이름표를 쓰다듬는다. 한때 자신의 이름이 적히던 자리에 이제는 팀의 이름이 더 크게 보인다. 떠난 것이 아니라 자리를 바꿔 같은 일을 계속하는 것. ‘좋은 선수’로 끝나는 삶 대신 ‘좋은 동료’를 남기는 길을 선택했다.

그날 밤, 메시지가 온다. “캡틴, 오늘 그 한마디 덕분에 살았어요.” 그는 짧게 답한다. “내일도 하자.” 과장은 없고 과거형은 없다. 현재형으로 버티는 팀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해시태그
#표승주 #주장 #온도조절 #작은제스처 #기준 #현재형의팀 #필승원더독스 #신인감독김연경



---

인쿠시 — 언어가 서툴 때도 선택은 또렷하다

인쿠시는 낯선 도시의 체육관에서 하루를 쌓는다. 첫 해에는 단어보다 동작이 빨랐다. “괜찮다”는 말이 떠오르기 전에 손바닥이 먼저 나간다. 합의의 손바닥. 그 동작 하나로 낯섦을 줄인다.

그는 스스로를 강하게 보이게 만들지 않는다. 대신 정확하게 보이게 한다. 큰 스윙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언제 크게, 언제 살짝, 언제 방향을 틀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적다. 인쿠시는 그 ‘선택’을 배우며 성장했다. 실수한 다음 랠리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 그게 그의 성실함이다.

외국인 선수로 산다는 건 경기 외의 시간에서 더 어려울 때가 있다. 식당 메뉴판, 버스 노선, 병원 접수. 작은 곤란들이 하루에 몇 번씩 쌓인다. 그는 그때마다 한 단어씩 익히고, 한 제스처씩 익힌다. 말보다 빠른 건 눈빛과 손짓이다. 팀은 그 신호로 하나가 된다.

경기가 잘 풀릴 때도 그는 얼굴을 크게 바꾸지 않는다. 블로킹을 뚫어 난 뒤에도, 다음 서브를 준비하며 고개를 한 번 숙인다. 감정의 파도를 크게 타지 않으려는 작은 습관이 경기의 바닥을 만든다. 누군가에게는 타점이 보이고, 어떤 누군가에게는 이 침착함이 보인다. 둘 다 그의 진짜 실력이다.

가끔 홈이 아닌 관중석에서 그의 이름이 서툴게 불린다. 발음이 조금씩 다르다. 그는 그 소리를 좋아한다. 어색한 호명은 관심의 다른 얼굴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정확히 불릴 날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 그는 오늘의 선택을 더 매끄럽게 만든다.

하루가 끝나면 작은 메모에 두 가지를 적는다. “오늘 잘한 것 / 오늘 바꿀 것.” 다음 날 아침, 첫 번째 공을 맞는 순간까지 그 종이는 주머니 속에 있다가, 땀이 배면 버려진다. 남는 건 습관뿐. 그 습관이 그의 이름을 조금씩 분명하게 만든다.

해시태그
#인쿠시 #선택의정확도 #합의의손바닥 #낯섦견디기 #침착함 #작은습관 #필승원더독스 #신인감독김연경





---

타미라 — 흐름이 흔들릴 때, 전환의 속도를 맡는다

타미라는 교체 라인 앞에서 짧게 숨을 고른다. 그의 역할은 화려한 솔로가 아니다. 노래와 노래 사이, 무대를 비워두지 않는 연결부에 가깝다. 들어오는 순간 팀의 발소리가 한 톤 빨라진다. 블록의 손 모양이 또렷해지고, 커버 삼각형이 빠르게 완성된다.

그는 높이로만 평가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높이는 선명하지만, 지속이 진짜다. 첫 수비에서 이미 방향을 잡고, 두 번째 동작에서 공격의 길을 열어준다. 누군가의 시선이 득점을 쫓을 때 그는 ‘그 직전’을 정리한다. 그래서 그의 가장 좋은 장면은 화면 중앙이 아니라 가장자리에 있을 때가 많다.

낯선 나라에서 생활을 시작했을 때 그는 먼저 시간을 배웠다. 서두르면 무너지는 시간, 늦으면 놓치는 시간, 제때면 열리는 시간. 전환은 결국 시간의 문제였다. 훈련이 끝난 뒤, 그는 종종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내가 한 발 더 빨랐으면?” 그 질문 하나가 내일의 속도를 바꾼다.

인쿠시와 나란히 서 있을 때, 둘은 말보다 웃음이 먼저 나온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왔지만 같은 리듬을 찾고 있다는 걸 둘 다 안다. 벤치에서 코트로, 코트에서 벤치로 오가는 사이에도 그 리듬은 끊기지 않는다. ‘같이’라는 단어가 두 사람 사이에서 움직임으로 번역된다.

경기 막판, 한 점이 길을 낼 수 있을지 모두가 망설일 때 그는 블록을 닫고 곧장 커버 위치로 떨어진다. 결과가 좋지 않아도 표정은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다음 랠리가 이미 시작됐다고 믿기 때문이다. 타미라는 “지금”의 사람이 아니라 “다음”의 사람이다. 그래서 팀은 그를 필요로 한다.

라커를 나서며 그는 코트 쪽을 한 번 더 본다. 조명이 내려앉은 후의 바닥은 모든 소리를 흡수한다. 오늘의 전환이 내일의 습관이 되기를, 내일의 습관이 팀의 문화가 되기를. 그는 묵음으로 기도하고, 운동화 끈을 다시 조인다.

해시태그
#타미라 #전환의속도 #커버삼각형 #지속 #다음의사람 #듣는리듬 #필승원더독스 #신인감독김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