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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온도

자생적 마찰 47℃ 외부의 온기가 사라진 서늘한 진공 속에서, 타인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마찰을 통해 피워 올리는 작지만 단단한 생존의 온기

2부: 점화(點火) 구간 (31℃~60℃)

자생적 마찰 47℃

외부의 온기가 사라진 서늘한 진공 속에서, 타인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마찰을 통해 피워 올리는 작지만 단단한 생존의 온기

1. 온기가 증발한 진공 속에서 시작된 최초의 움직임

외부의 온기가 완전히 사라진 자리에는 한동안 서늘한 고요만 남는다. 잔혹할 만큼 투명한 각성은 텅 빈 나를 또렷하게 드러냈지만, 무기물처럼 얼어붙은 그 상태로 언제까지나 머물 수는 없다. 진공은 세계를 명료하게 보여주지만 유기체의 생명을 영구히 유지시켜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때 타인의 뜨거운 체온이 닿아 맹렬하게 녹아내렸던 피부는 이제 차갑게 식어 있고, 그 위로 건조한 공기가 무겁게 스며든다. 예전 같으면 이 지독한 한기를 견디지 못해 다시 누군가에게 손을 뻗었을 것이다. 나를 구원해 줄 낯선 열을 찾아 본능적으로 몸을 기울이고 기꺼이 나를 지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나는 가만히 나의 빈손을 내려다본다. 그리고 얼어붙은 두 손을 천천히 마주 잡고, 조심스럽게 비비기 시작한다. 거친 마찰이 일어나고, 아주 미약한 온기가 손바닥 사이로 스며든다. 그것은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고 초라하며 불완전한 열기다. 하지만 그 열은 외부에서 폭력적으로 주입된 것이 아니라 오직 나의 움직임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이 작고 투박한 차이가 멈춰있던 나의 궤도를 완전히 바꾼다.

2. 코나투스: 사라지지 않으려는 작고 굳건한 태도

스스로 온기를 만들어내는 마찰은 필연적으로 고통을 동반한다. 마주 비빈 피부는 붉게 달아오르고 근육은 뻣뻣하며, 마음은 여전히 서늘한 폐허 위에 서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찰을 멈추지 않는다. 네덜란드의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는 존재하는 모든 사물과 생명체가 스스로를 보존하려는 본원적인 힘을 지닌다고 사유하며, 이를 코나투스라 명명했다. 그것은 세계를 뒤집겠다는 거창한 의지가 아니라, 단지 무(無)로 사라지지 않으려는 가장 순수하고 끈질긴 힘이다. 나는 지금 그 힘의 가장 밑바닥 단계에 서 있다. 타인의 거대한 용광로 속에 녹아 사라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의 형태를 유지하려는 작고 위태로운 긴장. 누군가의 압도적인 열을 빌리는 대신, 나의 초라한 체온만으로 이 차가운 진공을 버텨보겠다는 미세한 결심. 이것은 세상에 내보이는 거창한 선언이라기보다 나 자신을 향한 조용한 방향의 설정이다. 거대한 불꽃을 피우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결코 꺼지지 않겠다는 묵묵한 태도인 것이다.

3. 건조한 일상 위로 울려 퍼지는 존재 증명의 노동

이 묵묵한 태도는 멈춰있던 일상의 표면 위에서 구체적인 움직임으로 드러난다. 차가운 복도 바닥에 버려지듯 떨어져 있던 플라스틱 출입증을,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손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허리를 굽혀 주워 든다. 목에 거는 순간 금속 줄의 서늘한 감촉이 맨살에 닿지만 이번에는 놀라거나 피하지 않는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기대어 회피하려 했던 타율적인 무게가 아니라, 온전한 주체로서 내가 감당해 내야 할 내 몫의 무게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방에서도 풍경은 달라진다. 타인의 온기가 증발해 버린 빈 의자와 꺼진 모니터 사이에서, 나는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키보드를 누르는 손끝은 아직 얼어붙어 어색하고 화면에 찍히는 문장들은 매끄럽지 않다. 타인의 숨결이 불어넣던 파괴적이고 맹렬한 영감은 이제 흔적도 없다. 대신 플라스틱 자판과 거친 손끝이 부딪히는 건조한 마찰음만이 방 안의 고요를 밀어낸다. 한 글자씩, 느리게, 그러나 결코 멈추지 않고. 누군가에게 나의 완벽함을 증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굳건히 이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유지하기 위해 수행하는 눈부신 노동이다.

4. 환희가 아닌 지속, 타인의 열기 없이 하루를 건너는 법

이 온도는 화려하게 타오르지 않는다. 아직 나 자신이나 누군가를 온전히 덥혀줄 만큼 뜨겁지도 않다. 그러나 이 거친 마찰열은 분명히 추락이 아닌 상승의 방향을 품고 있다. 타인의 맹렬한 열이 휩쓸고 지나간 폐허 위에서, 나는 다시 나를 중심에 놓기 시작한다. 누군가를 구원자로 세우는 맹목적인 믿음도 없고, 나를 잃어버릴 만큼 위험하게 융해되지도 않으며, 오직 스스로 만들어낸 마찰의 힘으로 무거운 하루를 통과해 낸다. 맞잡은 손바닥에서 시작된 이 작은 열은 아직 몸 전체를 덥히기엔 턱없이 부족하지만, 내가 마찰을 멈추지 않는 한 결코 꺼지지 않고 끈질기게 이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벅찬 환희나 운명적인 합일이 아니라, 묵묵한 지속의 선택이다. 스스로 사물이 되어 사라지지 않겠다는 조용한 저항이며, 오직 나의 체온으로 나를 지탱하겠다는 서툴지만 가장 단단한 자립의 시작이다. 이 거칠고 투박한 온도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타인의 맹렬한 열기 없이도 하루를 건너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자생적 마찰

이것은 외부의 온기가 사라진 서늘한 진공 속에서,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마찰을 일으켜 생존의 열기를 만들어내는 단단한 자립의 상태다. 즉, 철학자 스피노자가 말한 코나투스처럼, 사라지지 않으려는 끈질긴 힘으로 일상의 노동을 재개하며 오직 나의 체온으로 하루를 지탱하는 묵묵한 지속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