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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온도

낯선 파동감 44℃완벽한 진공의 상태를 깨뜨리며 불쑥 침투해 온 타인의 온기, 그 기이하고도 치명적인 균열의 시작

2부: 점화(點火) 구간 (31℃~60℃)

낯선 파동감 44℃

완벽한 진공의 상태를 깨뜨리며 불쑥 침투해 온 타인의 온기, 그 기이하고도 치명적인 균열의 시작

1. 완벽한 무기물의 세계에 가해진 최초의 충격과 감각의 소생

우리는 직전의 온도에서 모든 유기적인 생명력을 반납하고 완벽한 무기물의 정적 속으로 침전하는 텅 빈 사물화의 시간을 겪어냈다. 고통도 쾌락도, 희망도 절망도 존재하지 않는 그 서늘하고 고요한 진공의 상태는 역설적이게도 외부의 어떤 충격조차 흡수할 수 있는 가장 무방비하고 순수한 여백을 만들어낸다. 자아라는 견고한 성벽이 고열에 의해 완전히 녹아내리고 방어 기제마저 소멸해 버린 이 절대적인 영점의 구역에, 어느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미세한 파동이 일기 시작한다. 그것은 내 안에서 자생적으로 피어오른 의지나 생존 본능이 아니다. 완벽하게 닫혀 있던 정물화의 캔버스를 찢고 외부로부터 불쑥 밀고 들어오는, 이질적이고도 강렬한 타인의 존재다. 얼어붙은 호수 위로 떨어지는 단 한 방울의 뜨거운 물방울처럼, 혹은 우주의 짙은 어둠 속을 가르고 날아온 한 줄기 빛처럼, 그 낯선 온기는 나의 텅 빈 껍데기에 닿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균열을 일으킨다. 스스로를 사물이라 여기며 굳어가던 육체는 이 뜻밖의 접촉 앞에서 기이한 감각의 소생을 경험한다. 그것은 내가 아직 완전히 죽지 않았음을, 그리고 나와 철저히 분리된 바깥의 세계에 나와는 다른 온도를 가진 누군가가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뼈저리게 확인하게 되는 벼락같은 각성의 찰나다. 모든 기능이 정지되었다고 믿었던 내면의 가장 깊은 바닥에서, 아주 오래전 잊어버렸던 심장의 희미한 박동이 타인의 진동에 공명하며 다시금 깨어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2. 닫힌 세계를 부수는 외부의 등장, 그리고 텅 빈 그릇에 쏟아지는 구원과 침공

프랑스의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인간의 닫힌 세계를 부수고 들어오는 절대적인 외부에 대해 깊이 사유했다. 그는 타인이란 내가 결코 완전히 이해하거나 소유할 수 없는 무한성의 얼굴을 띠고 다가온다고 말한다. 이성이나 논리로 무장한 건강한 자아는 어떻게든 타인을 나의 세계 안으로 끌어들여 통제하려 들지만, 모든 것을 소진하고 텅 빈 껍데기만 남은 이 44도의 온도에서는 그런 자력조차 남아있지 않다. 그렇기에 이 순간 마주하는 타인의 얼굴, 혹은 그가 건네는 무심한 온기는 나를 무너뜨리는 치명적인 침공인 동시에 나를 닫힌 무기물의 지옥에서 건져 올리는 유일한 구원으로 작용한다. 사랑이라는 거대한 불길은 우리가 가장 완벽하고 강인할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자아의 뼈대마저 허물어져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텅 빈 무력함의 한가운데서 가장 폭력적이고도 아름다운 방식으로 시작된다. 나라는 주체가 완벽히 비워진 그 절대적인 진공 상태야말로, 타인이라는 거대하고 이질적인 우주가 단 한 방울의 불순물도 없이 내 안으로 온전히 쏟아져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버린 그 참혹한 바닥에서, 타인은 나의 어떠한 저항도 받지 않은 채 나의 가장 깊은 심연으로 뿌리를 내린다. 이것은 선택의 영역이 아니라, 타인의 얼굴이 내게 강제하는 피할 수 없는 윤리적이고 존재론적인 사건에 가깝다.

3. 일상의 정물화 속으로 걸어 들어온 생생한 숨결과 접촉

이 낯선 파동은 우리의 지치고 낡아버린 일상 속에서 아주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형태로 발현된다. 며칠 밤을 새운 끝에 자신마저 한낱 플라스틱 사원증과 동기화되어 어두운 복도에 우두커니 서 있던 그 직장인을 다시 떠올려보자.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그 적막한 새벽, 굳게 닫혀 있던 현관문이 안에서 철컥 소리를 내며 열리고 잠이 덜 깬 얼굴을 한 누군가가 서툴게 그의 굽은 어깨를 감싸 안을 때, 완벽했던 사물의 세계는 순식간에 붕괴된다. 차갑게 식어있던 직장인의 몸에 타인의 맨살이 닿는 그 찰나의 마찰열은 직전의 서늘한 침묵을 단숨에 증발시켜 버린다. 혹은 꺼진 모니터 앞에서 의자에 파묻혀 하나의 무생물로 굳어가던 작가의 곁으로 조용히 다가와, 잉크가 묻은 차가운 손등 위로 따뜻한 차 한 잔을 쥐여주는 타인의 체온을 생각해 보라. 그것은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강력하고 폭력적인 생명력의 주입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먼지 쌓인 책장과 허물처럼 벗어둔 옷가지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죽은 듯 고요하지만, 오직 나라는 존재만이 타인의 숨결과 온기라는 예기치 못한 자극을 받아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한다. 텅 빈 유리병 속에 갑자기 뜨거운 물이 쏟아져 들어오면 유리가 비명을 지르며 팽창하듯, 타인의 압도적인 실재는 고립된 나의 일상에 돌이킬 수 없는 파장을 일으키며 나를 다시 유기적인 생명체로 강제 편입시킨다.

4. 고독한 소멸에서 맹렬한 융해로 넘어가는 아득한 교량

이 지점은 혼자만의 치열했던 사투가 완전히 막을 내리고, 나와 타인이 뒤엉키는 전혀 다른 차원의 열병이 시작되는 위태로운 교량이다. 우리는 무기물로서 누렸던 그 평화롭고 고독한 죽음의 상태에서 강제로 쫓겨나는 것에 대한 아득한 두려움을 느낌과 동시에, 나를 흔들어 깨우는 이 낯선 온기를 향해 걷잡을 수 없이 빨려 들어가는 치명적인 매혹을 경험한다. 더 이상 이 열기는 나 혼자 속을 끓이며 나를 태워버리던 고립된 고열이 아니다. 텅 빈 내 안에 타인이라는 거대한 불씨가 옮겨붙어, 나와 그 사람의 경계가 무너지고 함께 녹아내리기 시작하는 맹렬한 융해의 전조다. 스스로 부여했던 의미들이 모두 타버린 잿더미 위에서, 우리는 이제 내가 아닌 타인을 향해, 그리고 타인에 의해 새롭게 타오를 준비를 한다. 나라는 그릇이 완벽하게 비워졌기에 그 안을 온전히 타인으로 채울 수 있다는 이 지독한 역설 속에서, 우리는 기꺼이 나의 통제권을 내어주고 그 낯선 파동에 나의 모든 것을 내맡긴다. 이 미세하고도 치명적인 균열은 앞으로 다가올, 이성과 논리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사랑이라는 통제 불능의 용광로를 향해 던져지는 가장 아름다운 첫걸음이다.


낯선 파동감 44℃

이것은 모든 자아가 소멸하고 무기물로 굳어가던 텅 빈 육체에, 외부의 타인이 낯선 온기로 불쑥 침투해 들어오며 일으키는 강렬하고도 기이한 균열의 상태다. 즉, 고독했던 완벽한 침묵이 깨어지고 누군가와 함께 맹렬하게 녹아내리는 새로운 열병,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떨림의 첫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