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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7월 18일 대한매일신보 창간

조용한 저항의 펜 끝
대한매일신보, 잊혀선 안 될 시작

1, 민족의 어둠 속, 작은 불빛 하나가 켜지다

1904년 서울 정동 거리. 신문 한 장을 손에 든 소년이 낡은 목판 인쇄소 앞에 서 있다. 회색 새벽빛 속에 인쇄소 내부엔 등불 하나만 켜 있고, 그 불빛 아래 종이를 들고 있는 인쇄공의 손이 떨리고 있다.


1904년 7월 18일, 조선의 거리는 러일전쟁의 포화에 휩싸인 채 거짓과 침묵이 뒤엉킨 시기였다. 외세는 서로의 이익을 위해 조선을 무대로 삼았고, 그 틈에서 조선의 진실은 지워지고 있었다. 바로 그날, 서울 정동에서 한 장의 신문이 조용히 발행되기 시작했다. 그것이 ‘대한매일신보’다. 처음엔 영국인 언론인 어니스트 베델(Ernest Bethell)이 영어로 창간한 작은 외신 주보였고, 이후 양기탁이 합류하면서 한글판이 함께 발행되었다. 그들은 조선인의 목소리를, 조선인의 눈으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인쇄물이 아니라, 침묵의 밤을 뚫고 나온 첫 번째 언어였다.



2. 펜은 총보다 조용했지만, 더 멀리 닿았다

신문을 펼친 군중들. 누군가는 읽고, 누군가는 들려주고, 또 누군가는 그대로 눈을 감고 있다. 바닥엔 ‘을사늑약’이라는 글자가 적힌 전단지가 구겨져 있고, 하늘은 붉게 타오른다.


대한매일신보는 ‘신문’이라는 이름의 무기였다. 일제의 부당한 폭력과 침략을 고발했고, 을사늑약의 치욕도 신문의 지면으로 조선 땅 곳곳에 퍼뜨렸다. 가장 유명한 건 이토 히로부미를 직접 겨냥한 사설이었다. 당대 최고 권력자에게 정면으로 맞선 글, 그것은 목숨을 건 기록이었고, 동시에 독립을 향한 절규였다. 펜 끝에서 흘러나온 문장은 칼보다 더 날카로웠고, 활자 하나하나에 조선의 상처가 묻어났다. 침묵을 깨는 것은 언제나 무기가 아니라 말이었다.

3. 언론의 탄압과 폐간, 그러나 사라지지 않은 이름

재판정 안의 베델과 양기탁. 벽엔 일장기가 걸려 있고, 창문 너머론 궂은 비가 내린다. 두 사람은 말없이 앉아 있지만, 그 앞 책상 위엔 대한매일신보가 펼쳐져 있다.


결국 일제는 그 신문을 두고 보지 않았다. 베델은 모욕죄로 기소당했고, 재판 후에도 신문은 계속되었지만, 끝내는 1910년 한일합방 직전 폐간되었다. 하지만 대한매일신보가 남긴 언어는 사라지지 않았다. 수많은 조선 청년들이 그 글을 읽고 독립운동에 뛰어들었고, 거기서부터 또 다른 선언과 투쟁이 시작되었다. 신문 한 장이 역사를 바꾸진 않았지만, 역사는 그 신문을 기억한다. 이름은 사라져도, 기록은 남는다.

4. 오늘, 언론은 다시 펜을 꺾고 있는가

오늘날의 포털사이트 화면을 배경으로, 한 아이가 뉴스 화면을 응시하고 있다. 화면엔 연예인 속보가 크게 떠 있고, 구석에 작은 글씨로 ‘기후 위기’ 같은 중요한 뉴스가 흐릿하게 보인다


1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지금 한국의 언론은 권력과 자본 앞에서 얼마나 곧은 펜을 들고 있는가. 수많은 포털과 속보 경쟁 속에서 진실은 점점 희미해지고, 클릭 수가 진실의 무게를 대신하고 있다. 침묵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지금은 말이 넘쳐나서 묻히는 시대다. 어쩌면 가장 무서운 검열은 검열이 아닌 ‘관심 없음’인지도 모르겠다. 베델과 양기탁이 한겨울 밤, 인쇄기에 먹물을 올리며 떨리는 손으로 눌렀던 활자들은 우리에게 아직도 말하고 있다. 언론은 말해야 한다. 침묵하더라도, 진실 앞에서만은 말해야 한다.


박물관 전시실. 오래된 인쇄기가 유리 진열장 안에 놓여 있고, 그 앞에 선 학생들이 조용히 서 있다. 인쇄기 아래에는 ‘대한매일신보 창간호’가 빛바랜 채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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