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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1월 9일 (2005년) : 국가의 고백, 그리고 개인의 부활

1. 40년의 침묵이 깨지다, 봉인 해제된 판도라의 상자와 드러난 민낯

2005년 1월 9일, 대한민국 서울의 외교통상부 청사에서는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결정적인 봉인 해제가 이루어졌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 이후 40년 동안 "국익을 위해 비밀에 부쳐야 한다"며 굳게 닫혀 있던 1,200여 쪽의 회담 기록이 세상의 빛을 본 것이다. 그동안 피해자들은 "일본에게 받은 돈의 진실을 알려달라"고 끊임없이 외쳤으나, 국가는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법원의 공개 판결에 떠밀려 마지못해 열린 이 판도라의 상자 안에는, 국민들이 막연히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더 충격적이고 불편한 진실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건조한 외교 문서가 아니라, 가난했던 신생 독립국가가 생존을 위해 자국민의 고통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보여주는 처절한 자화상이자, 국가라는 거대 권력이 개인의 삶을 어디까지 침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2. 가난한 아버지의 비정한 거래, "개인에 대한 보상은 없다", 국가가 가로챈 청구권

문서 속에 드러난 진실은 잔인했다. 협상 당시 일본 정부는 "징용 피해자 개인에게 직접 보상금을 지급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를 거절한 것은 한국 정부였다. 당시 박정희 정부의 협상단은 "우리가 (보상금을) 일괄적으로 받아서 국내 문제는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역제안했다. 결국 일본이 제공한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의 자금은 '식민 지배에 대한 배상금'이라는 명확한 명분조차 없이 '독립축하금'이나 '경제협력자금'이라는 모호한 이름으로 포장되어 한국 정부의 금고로 들어갔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닌 존재임에도, 이날 공개된 문서는 국가가 때로는 국민 개개인의 권리를 외교적 거래의 수단으로 삼을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고통이 국가의 발전을 위한 땔감으로 쓰였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했다.

3. 요정에서 결정된 민족의 몸값, 냅킨 위에 적힌 '김-오 메모'와 정치적 담판

이날의 문서 공개는 그동안 소문으로만 돌던 '이면 합의'의 실체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수십만 피해자의 피눈물이 서린 배상금 규모는 치열한 법리 논쟁이 아닌, 1962년 도쿄의 한 요정에서 이루어진 술자리 담판으로 결정되었다.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종필과 일본 외상 오히라 마사요시는 냅킨(혹은 메모지)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숫자를 흥정했다. "6억은 줘야 한다"와 "3억도 많다"는 실랑이 끝에 '무상 3억, 유상 2억'이라는 숫자가 그 작은 종이 위에 적혔다. 이것이 바로 악명 높은 '김-오 메모'다. 훗날 김종필은 이를 "제2의 이완용 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 없다"고 회고했지만, 국민의 존엄이 밀실에서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는 국가 간 조약이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 않았을 때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오점이다. [1]

4. 폭파하고 싶었던 독도, 미국의 그림자 : 쫓기는 정권과 냉전의 논리가 빚어낸 졸속

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또 하나의 충격적인 비사는 독도 문제였다. 협상의 조속한 타결을 위해 당시 김종필 부장은 미 국무부 관계자에게 "독도를 폭파해 버리고 싶다"는 극단적인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는 일본 측에 독도를 넘겨줄 수는 없지만, 독도 문제 때문에 자금을 받는 일이 지체되어서는 안 된다는 박정희 정권의 절박함과 조급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한 이 배후에는 한일 양국을 빨리 화해시켜 동북아 반공 전선을 구축하려던 미국의 강력한 압박이 있었다. 결국 독도 문제는 "해결하지 않는 것을 해결로 한다"는 기이한 미봉책으로 덮어졌다. 국익이라는 이름 아래 영토 주권과 국민 정서마저 협상의 걸림돌로 취급되었던 것이다. [2]

5. 6600만 달러의 검은 의혹, 경부고속도로의 신화 뒤에 숨은 리베이트설

공식 문서에는 기록되지 않았으나, 1965년 체제에 끊임없이 따라붙는 가장 어두운 그림자는 '리베이트 의혹'이다. 당시 일본 기업들이 한국에 차관을 제공하는 대가로 일정 금액을 박정희 정권의 정치 자금으로 되돌려 주었다는 의혹이다. 미 하원의 프레이저 보고서(Fraser Report)는 1965년 한일협정 전후로 일본 기업들이 민주공화당 예산의 상당 부분을 충당하는 자금을 제공했다는 정보를 미 정보기관이 입수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 규모는 약 6,600만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식민 지배의 대가로 받은 돈의 일부가 피해자도, 국가 경제도 아닌 군사 정권의 권력 유지를 위한 검은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뜻이 된다. 이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화려한 성취 뒤에 감춰진 도덕적 결함을 시사한다. [3]

6. 국가는 개인의 주인인가, 대리인인가 : 전체를 위한 소수의 희생을 정당화했던 야만

이 모든 비사와 1월 9일의 공개 문서는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법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국가는 국민 개개인이 모여 만든 계약의 산물인가, 아니면 국민 위에 군림하며 국민의 권리를 처분할 수 있는 초월적 존재인가. 1965년의 국가는 후자였다. 국가는 자신이 가진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하여 국가 간의 합의를 끝냈으니, 국민 개인의 청구권도 소멸했다고 믿었다. 국가는 '조국 근대화'라는 대의(大義)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나 민주공화국에서 국가는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대리인일 뿐, 주인의 권리를 마음대로 포기하거나 헐값에 넘길 수 있는 주인이 아니다. 2005년의 문서 공개는 바로 이 '국가 만능주의'의 야만에 대한 늦은 반성문이었다.

7. 무엇이 국가인가에서, 무엇이어야 하는가로 : 단 한 사람의 존엄도 포기하지 않는 나라를 향하여

2005년 1월 9일은 과거의 치부를 드러낸 부끄러운 날인 동시에, 대한민국이 비로소 '국가주의'의 망령에서 벗어나 '인권 국가'로 나아가는 첫발을 뗀 날이다. 이후 이어진 2018년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은 바로 이날 공개된 문서와 그에 따른 사회적 성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는 배웠다. 아무리 가난하고 힘든 시절이었다 해도, 절차적 정의와 개인의 동의 없는 국가의 결정은 결국 훗날 더 큰 사회적 비용과 분열을 초래한다는 것을. 1월 9일은 우리에게 명령한다. 다시는 국가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지 말라고. 그리고 가장 약한 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국가가 존재해야 할 유일한 이유라고. 이것이 40년 늦게 배달된 문서와 그 이면의 비사들이 우리에게 남긴 무거운 숙제다.


[참고 문헌 및 각주]

[1]: 김-오 메모(Kim-Oh Memo): 1962년 11월 12일,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과 오히라 마사요시 일본 외상이 도쿄에서 만나 대일 청구권 자금 규모와 내역에 합의하며 작성한 메모.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상업차관 1억 달러 이상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 메모는 한일 회담의 쟁점을 정치적 담판으로 해결한 결정적 증거로 평가받는다. (출처: 한일회담 외교문서 공개 등 관련 역사 기록)

[2]: 독도 폭파 발언: 김종필 전 총리가 한일협정 과정에서 "독도를 폭파해 버리고 싶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것은 여러 외교 기록과 증언을 통해 확인된다. 미 국무부 외교문서(FRUS) 1961-1963년 판에는 그가 1962년 10월 딘 러스크 미 국무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독도를 폭파해서 없애버리고 싶다(he would rather bomb the island out of existence)"고 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출처: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61–1963, Volume XXII)

[3]: 프레이저 보고서(Fraser Report): 1978년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산하 국제기구소위원회가 발간한 '한미관계 조사보고서'. 이 보고서에는 "일본 기업들이 1961년부터 1965년까지 한국 공화당 예산의 3분의 2를 제공했다는 보고가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6개 일본 기업이 총 6,600만 달러를 지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출처: U.S. House of Representatives, Investigation of Korean-American Relations,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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