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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7월 16일 오늘의 한국사

말하지 못한 진실 앞에서

2025년 7월 16일, 김재규 재심 개시


프롤로그 – 조용한 법정에 다시 서는 이름

2025년 7월 1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재판부는 한 남자의 이름을 다시 불러냈다. 조용한 공기 속에 묻힌 그 이름은, 20세기 후반 한국 현대사의 심장을 쏜 인물이자, 오랫동안 말하지 못한 존재였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었고, 대통령을 직접 겨눈 손이었다. 재판정은 평소보다 무거웠고, 방청석에는 그의 유족과 몇몇 시민들이 앉아 있었다. 그날의 법정은 단지 사법적 절차를 밟는 공간이. 아니었고, 오랜 세월 묻혀 있던 진실의 무게를 다시 마주하는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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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의 그늘 – 김재규가 살았던 시간

김재규는 1926년 경상남도 진해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제강점기의 막바지를 통과했고, 해방 후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군인의 길을 걸었다. 5·16 군사정변 이후 박정희와 함께 권력의 전면에 등장했고, 내무부 장관을 거쳐 1976년 중앙정보부장에 임명되었다. 그는 오랜 세월 박정희의 가까운 동지였고, 동시에 그 체제의 감시자이자 설계자였다.

하지만 그의 삶이 단순한 권력자의 궤적만으로 그려지진 않았다. 그는 유신 체제가 내부로부터 부패하고 있음을 누구보다 절실히 체감하고 있었고, 특히 대통령의 의사결정이 차지철이라는 한 인물에게 과도하게 의존되며 급격히 비이성화되고 있음을 우려했다. 1979년 가을,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민 봉기, 이른바 ‘부마항쟁’은 그 우려를 현실로 드러냈고, 김재규는 그날 이후 더 이상 안에서의 조율로 유신의 방향을 되돌릴 수 없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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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그날의 총성

1979년 10월 26일, 서울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 저녁 식사 자리에는 박정희 대통령, 차지철 경호실장, 김계원 비서실장, 그리고 김재규가 있었다. 긴장과 불신, 오만과 침묵이 교차하던 식사 도중, 김재규는 준비된 권총을 꺼냈다. 총성이 울렸고, 박정희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차지철 역시 격투 끝에 피격되었고, 그날 밤, 한국의 권력 구조는 정면에서 무너졌다.

총을 쏜 직후, 김재규는 스스로 체포되었고, 이 사건은 ‘10·26 사태’로 명명되었다. 그러나 그 이름 아래 감춰진 것은 단순한 암살이나 정치적 충돌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랜 억압 속에서 내부로부터 터져나온 체제의 균열이었고, 박정희의 18년 통치가 남긴 가장 극단적인 결말이었다. 김재규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일관되게 주장했다. “나는 유신의 심장을 쐈다. 그것은 내 양심의 결단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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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쏜 총, 체제를 겨눈 탄환

그는 자신이 반역자가 아닌 ‘내부의 고발자’라고 생각했다.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언론은 그를 ‘광기의 암살자’로 묘사했고, 법원은 그의 동기를 인정하지 않은 채, 내란 및 대통령 시해죄로 사형을 선고했다. 그는 1980년 5월 24일 서소문 교도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의 최후는 조용했고, 죽음 이후에도 사회는 그를 다시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한국 사회는 그를 외면했다. 박정희의 유산은 여전히 강했고, 권력은 다시 군부로 넘어갔으며,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그날의 총성에 침묵으로 답했다. 김재규의 이름은 교과서 속 한 줄로 정리되었고, 그가 누구였는지는 지워지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은 점점 사라졌고, 그의 진술은 기이하게 왜곡되거나 잊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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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누가 무엇을 말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모든 침묵은 영원하지 않았다. 1990년대 이후, 한국은 문민정부로 이행했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 규명과 전두환·노태우의 사법처리가 이루어지면서, 시민들은 점점 더 많은 질문을 품기 시작했다. 유신체제는 왜 무너졌고, 그 내부에서 벌어진 균열은 무엇이었는가. 김재규는 과연 그 체제의 ‘결함’이었는가, 아니면 ‘대안’이었는가.

학자들은 그의 행동을 두고 평가를 갈랐다. 누구는 그를 민주주의의 이정표로 보았고, 누구는 권력 내부의 권력 교체로 보았다. 하지만 점차 분명해진 건, 단순한 암살로 치부하기엔 그의 선택은 지나치게 복잡했고, 지나치게 조용했다. 그는 자신의 죽음까지 모든 책임을 짊어졌고, 남기지 않은 말들 속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의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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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심, 진실은 법정에 묻힐 수 있는가

2025년, 그의 유족은 형사재판 재심을 청구했다. 단순히 억울함을 풀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그의 동기와 선택을 다시 역사 앞에 올려놓기 위한 시도였다. 그리고 7월 16일, 재심 개시가 결정되었다. 법정은 차분했지만, 법정 밖은 술렁였다. 다시 시작된 김재규에 대한 평가와 논쟁, 그 총성이 향했던 방향과 의미에 대한 질문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판사는 말했다. “진실은 누군가의 입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입이 막힌 이유까지 함께 돌아볼 때 비로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재심은 그 자체로 새로운 결론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우리는 이제, 사형 판결로 덮였던 어떤 말들의 행간을 다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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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한 시대의 그림자 앞에서

김재규는 더 이상 이 땅에 없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여전히 현재형으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정의롭다 말할 수 있는가. 권력을 무너뜨리는 총성이 모두 파괴인가, 아니면 어떤 경우에는 시작이 될 수 있는가. 그의 재심은 결국 그가 살아온 시대의 깊은 결함에 대한 반성이고, 그 결함을 외면해온 우리 모두에 대한 고요한 소환이다.

침묵은 가장 오래 남는 목소리다.
그가 남긴 것은 말보다 조용한 외침이었고,
그 외침은 46년이 지난 지금,
조심스럽게 다시 되살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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