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16년 겨울, 돈의동 골목으로 들어간 발자국
1916년 겨울, 종로 돈의동 골목은 겉으로 보기엔 그저 평범한 주택가처럼 보였다.
낡은 기와지붕과 일본식 목조 건물이 뒤섞여 있었고,
길가에는 장작을 쌓아 둔 집과 허름한 가게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서 있었다.
그러나 그때 조선은 이미 일본 제국의 식민지가 된 지 여섯 해가 지난 뒤였다.
관청 문서에는 일본 연호가 찍혀 있었고,
학교 교과서에서는 ‘대한제국’이라는 이름이 거의 사라져 있었다.
거리의 간판과 광고에는 일본어가 점점 더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겨울 어느 날, 시인이자 승려였던 만해 한용운이
몇몇 동료와 함께 이 골목을 천천히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유명 서예가 집에 구경 가는 길”처럼 보였지만,
속으로는 사라져 가는 조선의 숨결이 아직 남아 있는 방 하나를 찾아가는 길에 가까웠다.
그들이 찾은 집의 주인은
서예가이자 수집가, 그리고 독립운동가였던 위창 오세창이었다.
서화와 금석문, 오래된 문집과 편지가 켜켜이 쌓여 있는 집이었고,
잊혀지려는 이름들을 어떻게든 붙잡아 정리하고 있던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었다.
며칠 뒤, 이 방문은 신문 기사로 바뀌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1916년 12월 7일부터 16일까지
신문 『매일신보』에 만해의 연재 글 「고서화의 삼일」이 차례대로 실렸다.
돈의동 작은 화실에서 맡았던 종이와 먹 냄새는
조용한 문장들 속으로 옮겨져 기록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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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서화의 방과 종이와 먹이 버티던 조선
위창의 집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만해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거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탁본과 서화첩 더미였다.
돌에 새긴 글자를 종이에 떠낸 탁본들은
세월을 견디느라 조금씩 바래 있었지만,
글자의 획과 점은 여전히 또렷한 방향을 유지하고 있었다.
비문 위를 지나갔던 옛 사람들의 손길과 숨이
먹색에 눌어붙어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방 안에는 서첩과 화첩이 층층이 쌓여 있었고,
책꽂이에는 오래전 인쇄된 문집과 필사본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아직 정리되지 못한 종이 묶음들이 기대어 서 있었다.
밖에서는 일본 경찰의 발소리가 오가고 있었지만,
이 방 안에서는 여전히 ‘조선’이라는 이름이
종이와 먹의 무게로 버티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위창은 손님을 맞으며 차를 내왔다.
그는 오래된 물건을 자랑한다는 태도보다
“이건 사실 우리 모두의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처럼
한 권 한 권, 한 장 한 장을 조심스럽게 펼쳐 보였다.
만해는 글 속에서 자신을 “서화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여러 번 낮추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종이의 결, 먹빛의 층,
붓끝이 머뭇거리거나 힘차게 치고 나간 지점을 따라가며
그 위에 남은 사람과 시대의 기운을 세심하게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그에게 이 화실은 단순히 예술 작품을 걸어 둔 갤러리가 아니었다.
나라의 이름이 공문서에서 지워진 뒤에도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정신이
종이와 먹 속에 숨어 있는 하나의 방처럼 보였다.
문 밖의 제국과 문 안의 조선이
얇은 문틀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서 있는 풍경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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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근역서휘·근역화휘와 한 화면에 모인 얼굴들
둘째 날, 위창은 자신이 수십 년 동안 공들여 모아 온
두 가지 큰 서화첩을 만해에게 보여 주었다.
하나는 「근역서휘」, 다른 하나는 「근역화휘」라고 불리는 책이었다.
‘근역’은 무궁화의 나라, 곧 조선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근역서휘」에는 고려 말에서 대한제국 말기에 이르는
선인들의 편지와 시구, 비문의 일부, 다양한 서체들이
권권이 모여 있었다.
흘려 쓴 초서에서 단단한 해서까지,
친구에게 안부를 묻던 편지에서 묘비에 새긴 장엄한 문장까지,
그 안에는 조선 사람들이 평생 동안 써 내려간 문장과 필적의 조각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근역화휘」는 그림을 위한 화첩이었다.
진경산수의 세계를 열어젖힌 겸재 정선의 산과 물,
시장과 마을, 잔칫날의 장면을 살아 있는 것처럼 그려낸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위태롭고도 섬세한 시선을 지닌 혜원 신윤복의 인물들,
십장생과 학, 사슴과 거북, 소나무가 한 화면 안에서 공존하는 그림들까지
조선 화가들이 남긴 여러 얼굴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차례로 나타나고 있었다.
만해는 한 장 한 장 앞에서 잠시 멈추어 섰다.
어느 한 그림을 “압도적인 명작”이라고 과장하지도 않았고,
또 다른 그림을 서둘러 평가절하하지도 않았다.
대신 선의 흐름, 여백과 채움의 비율,
그림 속 인물의 눈길과 손짓 같은 디테일을 조용히 짚어 보았다.
그가 보고 있던 것은 거장의 이름만이 아니었다.
지금 같으면 연구자 외에는 잘 떠올리지 못할
수많은 서화가들의 이름과 호가
서화첩의 페이지마다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었다.
위창은 그 모든 이름을 “이 나라 서화의 얼굴들”이라는 한 장 안에 묶어 내고 있었고,
만해는 그 장면 전체를 하나의 풍경처럼 받아 적고 있었다.
그날 만해가 보고 간 서화첩 속 얼굴들 가운데 일부는
한 세기가 지나 전혀 예상치 못한 자리에서
다른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데몬헌터스의 캐릭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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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근역서화징·문화보국과 이름을 잇는 저항
만해가 위창의 집을 찾았던 1916년 12월 7일 무렵,
그의 책상 위에서는 또 하나의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조그만 종이 조각과 메모들이 빽빽하게 쌓여 있었고,
그 위에는 빗금과 동그라미, 작은 글씨들이 뒤섞여 있었다.
겉으로 보면 어지러운 메모 더미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한국 최초의 본격 서화 인명사전
「근역서화징」의 초고들이었다.
위창은 옛 문집과 금석문, 족보와 여러 기록들을 뒤져 가며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기까지 활동했던 서화가들을
가능한 한 빠짐없이 찾아내려 했다.
각 인물의 이름 옆에는
자와 호, 본관, 생몰 연도, 벼슬과 직책,
누구와 교류했고 어디서 살았는지,
어떤 글씨와 그림을 남겼고
그 작품이 어느 집과 절, 어느 고을에 남아 있는지까지
기록할 수 있는 모든 정보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렇게 모인 이름이 1,117개였다.
유명한 몇 사람만 화려하게 조명하는 대신,
조금이라도 기록에 닿는 서화가라면
모두 한 자리에 불러 모으려 한 시도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만해의 연재가 실린 『매일신보』는
총독부의 영향력 아래 있던 신문이었다.
지면 대부분은 제국의 정책, 관공서 소식,
일본이 원하는 방향의 기사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 한 귀퉁이에 ‘돈의동에서 본 고서화 이야기’가 연재되었다는 사실은
묘한 긴장을 품고 있었다.
겉으로는 서화 감상기처럼 보이는 글이었지만,
그 안에는 “조선의 옛 예술과 이름을 잊지 말자”는 마음이
옅게, 그러나 분명하게 숨어 있었다.
위창이 자주 입에 올렸다고 전해지는 “문화보국”,
문화를 지켜 나라를 지킨다는 생각은
이 조용한 기록 속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났다.
정면으로 식민 권력을 비난할 수 없던 시대에
이들은 이름을 잇는 방식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서화가들의 이름, 작품, 행적을 하나씩 불러내 적어 두는 일 자체가
“우리가 누구였는지”를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그 몸부림이 한 세기를 돌아
전혀 다른 형태의 이야기와 그림 속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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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K-콘텐츠 시대와 민화의 후손으로 선 데몬헌터스
한 세기가 지나면서 한국은 전혀 다른 풍경 속에 서 있었다.
한국은 더 이상 지도 한쪽 모서리의 식민지가 아니었고,
넷플릭스와 유튜브, 음악 스트리밍 차트를 통해
전 세계에 이미지를 뿜어내는 문화 생산지 가운데 하나가 되어 있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KPop Demon Hunters〉,
우리가 줄여 부르던 이름으로 데몬헌터스는
그 흐름 속에서 상징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
K-팝과 악귀 사냥이라는 설정이 표면에 놓여 있었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서 있는 얼굴들은 낯설기만 한 존재가 아니었다.
데몬헌터스의 캐릭터들은
사실 우리 민화 속 주인공들의 후손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HUNTR/X 멤버 한 명은 호랑이의 눈과 문양을 몸에 지니고 있었고,
또 다른 멤버는 학과 사슴을 섞어 놓은 것 같은 실루엣과 색감을 입고 있었다.
도시를 떠도는 악귀들은
전통 탈과 도깨비, 불화 속 괴물들의 형상을
현대적으로 비튼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배경에는 알게 모르게 십장생도의 구도와 책거리의 구조가 녹아 있었다.
호랑이와 까치가 마주 보던 호작도,
해와 달, 산과 구름, 사슴과 학, 거북과 소나무가
한 화면 안에서 공존하던 십장생도,
책과 문방사우, 그릇과 비단을 빽빽하게 채워 넣던 책거리 같은 민화들은
애초부터 일종의 ‘세계관 그림’이었다.
한 장의 화면 안에 우주의 질서와 인간의 소망,
장수와 복, 부와 배움에 대한 염원을 모두 담아 내려고 했던 그림들이었다.
데몬헌터스는 이 오래된 그림 속 인물들을
21세기 서울의 네온사인과 K-팝 무대,
애니메이션과 CG의 화면으로 옮겨 놓은 결과였다.
LED 스크린 뒤로 스쳐 지나가는 패턴과 문양 속에는
호랑이와 용, 학과 사슴의 형상이 숨겨져 있었다.
빌딩 사이 저승 세계의 골목에는
겸재 정선의 산수화와 추사 김정희의 글씨가
질감처럼 얇게 깔려 있었다.
그래서 이 작품의 캐릭터들은
단지 “새로운 설정의 아이돌 헌터들”로만 읽히지 않았다.
그들은 호작도의 호랑이와 까치,
십장생도의 동물들, 책거리 속 물건들이
모양을 바꾸어 다시 나타난 얼굴들이었다.
민화는 애니메이션과 K-팝의 언어를 빌려
다시 한 번 세계로 나가는 서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돈의동 화실에서 만해가 바라보던 서화첩 속 얼굴들은
한 세기를 돌아 네온사인 아래에서 춤추고 싸우는 장면으로
다시 태어나 있었다.
과거의 종이 위에 머물던 선과 여백이
이제는 스크린 위에서 움직이는 빛과 그림자로 변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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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2월 7일이 남긴 질문과 K-서화·민화의 자리
1916년 12월 7일에 시작된 만해의 연재 「고서화의 삼일」은
그가 보기에는 그저 작은 방문기를 적어 둔 기록에 지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러나 한 세기가 지난 지금,
그 글은 한국 서화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아 읽는
귀한 1차 자료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위창 오세창이 평생을 바쳐 정리한 『근역서화징』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출간되었을 때는 일부 학자와 수집가들만 들춰 보는 책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수많은 미술사 연구와 전시 기획,
교육 자료의 출발점이 되는 기본 텍스트가 되었다.
한 사람의 방, 한 권의 책,
한 시인의 연재 기사 몇 편이
이렇게 오래 남아 다른 시대의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단순한 감상을 넘어
조용한 책임감을 건네고 있었다.
데몬헌터스의 캐릭터들이
민화 속 주인공들의 후손으로 세계 무대에 서게 되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돈의동 화실에서 차곡차곡 쌓아 올린 서화첩과 인명사전이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미래의 K-콘텐츠가 뿌리를 내릴 토양이 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세계는 K-팝, K-드라마, K-애니메이션을 통해
한국을 기억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렇게 이어진다.
세계가 K-콘텐츠를 부를 때,
우리는 그 안에 K-서화와 K-민화의 언어까지
함께 싣고 나갈 준비를 정말로 마쳤는가.
돈의동 조용한 화실에서
만해가 탁본과 서화첩을 넘기며 맡았던 종이와 먹 냄새는
이 질문과 함께 전혀 다른 풍경으로 되살아난다.
넷플릭스의 화면, 콘서트 무대의 조명,
웹툰과 게임의 콘셉트 아트 속에서
민화와 서화의 선, 여백, 색이 모습을 드러낼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오래된 기록들이
현재형의 언어를 다시 얻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12월 7일, 한 시인이 한 집을 찾아가 적어 두었던 짧은 방문기는
그래서 아직 끝나지 않은 문장처럼 남아 있다.
그 문장을 어떻게 이어 쓸지는
이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가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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