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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스타일/패션과의 대화

나뭇잎 탁본 나시

9편 – 벚나무
꽃이 사라진 자리, 기억은 잎으로 남는다


그녀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벚나무 아래에 섰다. 계절은 여름으로 접어들었지만, 바람이 스쳐간 자리에는 아직도 벚꽃의 기척이 남아 있었다. 나무껍질은 그을린 듯 고요했고, 하늘로 뻗은 가지들은 투명한 햇빛 아래 물결처럼 일렁였다.


벚꽃은 사라졌지만, 벚나무의 잎은 그 어떤 계절보다 선명한 녹색을 품고 있었다. 그녀는 그 잎 하나를 따서 천 위에 눌러보았다. 뚜렷하지 않지만, 섬세하게 남겨지는 결. 그건 마치 누군가의 마음처럼, 오래된 감정을 조용히 꺼내 놓는 행위와도 같았다.

그 잎의 모양을 그대로 옮겨 만든 오늘의 나시는, 무채색이 아닌 부드러운 살구빛에 가까웠다. 햇살이 내려앉은 한낮의 벚나무 아래에서 그녀는 나무의 그림자와 하나가 되어 서 있었다. 얇고 흐르는 듯한 레이온 소재는 바람을 따라 유연하게 흔들리며, 몸의 선을 스치듯 감쌌다. 전체적으로 잎의 무늬는 조밀하지 않게 흩뿌려졌고, 가슴 아래로는 잎맥이 은은한 광택으로 부각되었다.

나무 아래에서의 정적, 그늘 아래에 머문 햇살, 그리고 바람. 오늘 그녀가 입은 이 옷은 단지 자연을 입은 것이 아니라, 기억을 입은 것이었다.

그녀는 손끝으로 나시의 자락을 매만졌다. 탁본으로 옮겨진 벚나무의 잎은 이미 천 속에 박혀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다시 잎을 꺼내어 세상에 보여주는 것 같았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감정처럼.

벚나무 아래, 여름 한가운데에서 그녀는 조용히 그 자리에 머물렀다. 나무와, 옷과, 기억 사이에 놓인 감각이 천천히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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