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파업은 범죄가 아니며, 생존권은 결코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지배권력은 언제나 그것을 ‘빨갱이’의 언어로 바꾸어왔다.
전후 폐허와 노동자의 절규
1945년 해방은 자유를 약속했지만, 그 자유는 곧 불평등으로 뒤섞였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물자는 부족했고, 식량은 암시장에서만 돌았다. 임금은 오르지 않았고, 공장 기계는 멈춰 섰다. 그 속에서 노동자들은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절박한 외침을 내뱉었다. 1946년 9월 23일, 철도·전기·운수·학교 등 전국의 산업과 교육 현장에서 일제히 파업이 일어났다. 해방 이후 한국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전국적 총파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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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로 몰린 생존권 투쟁
그러나 지배권력은 그 절규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총파업은 단순한 생존권 투쟁이었지만, 곧장 ‘좌익의 책동’, ‘공산주의 선동’이라는 낙인이 붙었다. 노동자가 굶주림을 벗어나기 위해 든 피켓은 어느새 ‘적색 깃발’로 변질되었다. 파업 현장에는 군경이 투입되었고, 지도부는 체포되었다. 생존권의 언어는 정치의 언어로 재단되었고, 절박한 목소리는 ‘불온’으로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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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파업을 이끈 중심 세력
당시 총파업을 실제로 조직한 것은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였다. 전평은 해방 직후 급속히 성장한 노동운동 단체로, 철도노조·전기노조 등 핵심 산업 노조들을 아우르며 100만 명이 넘는 노동자를 대표했다. 이들은 단순히 ‘이념’이 아니라 ‘생활’을 걸고 나섰다. 임금 인상, 식량 배급, 노동 8시간제, 민주적 노조 운영 등 요구안은 하나같이 현실적이고 시급한 문제였다. 그러나 지배권력은 전평을 곧장 ‘공산 세력’으로 규정하며 탄압했다. 그 결과 한국 노동운동의 시작은 ‘빨갱이 낙인’과 동시에 각인되었다.

낙인의 정치와 그 긴 그림자
이후에도 노동자의 총파업은 늘 같은 프레임에 갇혔다. 1970년대 평화시장 청년 전태일의 분신은 ‘용공’으로 왜곡되었고, 1980년대 노동자 대투쟁 역시 ‘사회 혼란 조장’이라는 이름으로 탄압받았다. 노동자의 목소리를 사회적 대화가 아니라 ‘국가 안보의 위협’으로 치환하는 방식은 시대를 막론하고 반복되었다. 낙인은 노동자의 요구를 무력화시키는 가장 손쉬운 도구였고, 그 언어는 권력의 입에서 빠지지 않았다.

오늘의 질문 ― 반복되는 적대의 언어
2020년대의 한국 사회에서도 노동자의 파업은 여전히 ‘이념의 그림자’ 속에 묶여 있다. 임금 체불을 막기 위한 파업조차 ‘귀족노조의 횡포’로 매도된다. 안전을 위한 파업은 ‘경제 발목잡기’라 불린다. 지배권력은 달라졌지만, 낙인의 언어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그 언어는 시민 사이의 불신을 키우며, 노동자의 목소리를 사회적 대화가 아닌 사회적 위협으로 둔갑시킨다.

지배권력의 시선이 아닌, 시민의 눈으로
역사의 교훈은 분명하다. 총파업은 범죄가 아니라, 절망 끝에 터져 나온 사회적 목소리였다. 그러나 지배권력은 늘 그것을 억압하고 왜곡했다. 이제는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여전히 ‘위협’으로 들을 것인가, 아니면 ‘시민의 언어’로 받아들일 것인가.
1946년 9월 23일, 그날의 외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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