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파리의 공기는 차가웠다.
한 남자가 호텔 문을 나섰고, 그 후로 다시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김형욱(金炯旭).
박정희 정권의 실세이자 중앙정보부(중정)의 초대 부장이었다.
한때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그는, 그날 이후 완전히 사라졌다.
권력의 심장부에 있었던 남자
김형욱은 1925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났다.
해방 이후 경찰에 들어가 좌익 세력 탄압에 앞장섰고,
6·25전쟁을 거치며 반공의 상징 같은 인물로 성장했다.
1961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났을 때, 그는 이미 박정희를 알고 있었다.
쿠데타 직후 중앙정보부 창설에 참여하며 초대 부장으로 임명되었다.
그의 권력은 절대적이었다.
그는 박정희의 오른팔이었고, 정적의 음모를 눈치채는 그림자였다.
그의 책상 위에는 수많은 인물의 정보파일이 쌓였고,
국회의원, 언론인, 군 장성의 일거수일투족이 그의 손에 들어왔다.
그는 정보의 제왕이었다.
그에게 충성하지 않는 자는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러나 권력의 정점은 언제나 추락을 내포한다.
1969년, 박정희가 3선 개헌을 추진하면서 균열이 생겼다.
김형욱은 이를 반대했다.
그는 박정희의 권력이 영구화되는 것을 경계했고,
결국 ‘불충한 신하’로 낙인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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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자, 그리고 폭로자
1973년 그는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그는 더 이상 권력의 부장이 아니라, 망명자 김형욱이었다.
그는 뉴욕 교민 사회에서 조용히 지내는 듯 보였지만,
곧 입을 열기 시작했다.
한국 언론인, 정치인, 군의 실체를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의 증언은 무게가 있었다.
1977년 미국 의회에서 열린 ‘프레이저 청문회’에 출석하며
박정희 정권의 정치자금과 인권 탄압을 폭로했다.
그의 발언은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중정은 그를 ‘배신자’로 규정했고,
그의 존재는 한국 정치의 금기어가 되었다.
그는 미국에서 책을 집필했다.
제목은 『김형욱 회고록』.
그 책에는 자신이 본 권력의 민낯, 그리고 박정희 정권의 실체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 책은 한국에서 출간되지 못했다.
원고 일부가 유출되었고,
그의 폭로는 곧 ‘위험한 예언’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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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실종
1979년 10월 초, 김형욱은 프랑스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그는 사업가와 만남을 가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10월 7일, 파리의 한 호텔을 나선 뒤 행방이 묘연해졌다.
목격자는 그가 낯선 두 남자와 차에 오르는 것을 봤다고 증언했다.
그 후, 그는 사라졌다.
프랑스 경찰과 미국 CIA, 한국 정보기관 모두 그를 찾지 못했다.
시신도, 흔적도 남지 않았다.
그의 실종은 곧 “국가에 의한 암살설”로 번졌다.
그는 한국 중앙정보부의 해외 공작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설이 유력했다.
1990년대 이후 일부 전직 요원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프랑스 외곽에서 살해된 뒤,
시체가 가축용 분쇄기에 넣어졌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확인된 진실은 없다.
하지만 진실이 없다는 것 자체가, 이미 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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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기억의 아이러니
김형욱은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권력은 믿을 수 없는 짐승이다.”
그는 그 짐승을 길들였고, 결국 그 짐승에게 삼켜졌다.
그의 인생은 한국 현대사의 축소판이었다.
독재의 수호자이자, 그 독재에 저항한 내부자.
그는 국가의 이름으로 감시하고, 또 그 국가로부터 감시당한 인물이었다.
그가 사라진 지 몇 주 뒤,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은 총에 맞아 사망했다.
그의 실종과 박정희의 죽음은 묘하게 이어졌다.
두 사람은 같은 시대의 거울이었다.
서로를 필요로 했고, 결국 서로를 파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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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몸, 남은 질문
김형욱의 시신은 지금도 어디 있는지 모른다.
그의 이름은 교과서에 오르지 않았고,
그의 공과 과는 여전히 논쟁 속에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는 그 시대의 권력과 공포를 대표했다는 사실이다.
그의 실종은 한 인간의 끝이 아니라,
한 시대의 균열이었다.
그는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권력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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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중앙정보부 60년사』, 국정원 편집실
미국 하원 프레이저 청문회 기록(1977)
《동아일보》 1979년 10월 기사, “김형욱 전 중정부장 파리에서 실종”
《한겨레21》, 1992년 인터뷰 “그날 파리에서 있었던 일”
위키백과, “김형욱” (ko.wikipedia.org/wiki/김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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