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9월, 서울은 환호로 가득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 이후 불과 며칠 만에 국군과 유엔군은 서울을 되찾았고, 거리는 다시 태극기로 물들었다. 신문은 ‘수복’이라는 단어로 가득 찼고, 사람들은 서로 손을 맞잡으며 전쟁의 암울한 시간에 한 줄기 희망이 찾아왔음을 노래했다. 그러나 같은 날, 그 환호의 이면에서 또 다른 총성이 울리고 있었다.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대전과 여수의 마을에서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삶이 ‘부역자’라는 낙인 속에 끊어졌다. 9월 27일은 한국전쟁의 승리의 날이자 동시에 비극의 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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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 경찰서 마당에서 울린 새벽의 총성
서울 수복의 함성이 들리던 그 시기, 대전에서는 공포의 명령이 실행되고 있었다.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으로 후퇴가 시작되자, 경찰과 헌병은 대전형무소와 프란치스코 수도원에 수감 중이던 사람들을 끌어냈다. 이들 중에는 정치범, 사상범, 단순 피의자까지 섞여 있었지만 구분은 중요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북한군에 협력할 수 있다’는 불안이 모든 것을 정당화했다.

기록에 따르면 1950년 9월 27일 새벽, 대전 경찰서 마당에 모인 수감자들이 총살되었다는 증언이 있다. 일부는 형무소 뒷산으로 끌려가 총살당했고, 또 다른 일부는 수도원 인근에서 집단 희생되었다. 숫자는 명확히 알 수 없다. 수백 명에서 수천 명까지 다양한 추산이 존재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국가의 손에 의해 무차별적인 학살이 자행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사건은 훗날 ‘대전 집단 희생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대전에서 흘린 피는 단순한 전시 비극이 아니었다. 그것은 국가가 공포정치와 반공 이데올로기를 무기로 삼아, 국민을 ‘잠재적 적’으로 취급한 사건이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침묵했고, 희생자의 이름은 수십 년 동안 기록조차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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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신풍리 ― 산골 마을에 남은 흔적
같은 날, 남쪽 전남 여수의 작은 마을에서도 총성이 울렸다. 1950년 9월 27일과 28일 이틀 동안, 여수 미면 신풍리에서 주민 66명이 학살당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서울 수복 이후 남아 있던 북한군 잔여 세력이 주민들과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혐의’였다.

군인들은 마을 주민들을 불러내 줄지어 세우고, 총을 쏘았다. 피할 수 없는 공포 속에서 쓰러진 이들은 대부분 평범한 농민, 노인, 여성, 심지어 어린아이들이었다. 그들이 진짜 ‘부역자’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전쟁의 광기 속에서 주민들은 군사작전과 민간인 학살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을 경험해야 했다.
오늘날 신풍리에는 작은 위령비가 세워져 있지만, 여전히 사건의 전모는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누가 지시했고, 왜 특정 마을이 선택되었는지, 책임은 어디까지 닿는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국가 폭력의 그림자가 한 마을을 파괴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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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호와 학살의 동시성
9월 27일은 이렇게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서울에서는 중앙청에 태극기가 다시 걸리며 “승리의 날”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대전과 여수에서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이유 없이 쓰러졌다. 역사 교과서에는 서울 수복이 크게 기록되지만, 그날 같은 시각에 울린 총성은 변두리에 머물렀다.

이러한 환호와 학살의 동시성은 한국전쟁의 본질을 보여준다. 전쟁은 언제나 두 개의 이야기를 쓴다. 하나는 국가와 군대가 기록하는 ‘승리의 역사’이고, 다른 하나는 민간인과 지역사회가 겪는 ‘피의 역사’다. 우리는 전자의 이야기를 축제처럼 기억하지만, 후자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침묵 속에 묻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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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되지 못한 이들의 이름
대전 집단 희생 사건과 신풍리 학살 사건은 오랫동안 공적 담론에서 지워져 있었다. 냉전의 긴장 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좌익 동조’로 몰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십 년 동안 유가족들은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2000년대 들어서야 진실화해위원회와 연구자들이 사건의 흔적을 조금씩 밝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희생자 수와 지휘 체계, 구체적 경위는 불분명하다. 남겨진 것은 희미한 증언과 기록, 그리고 조용한 묘지뿐이다. 이 사건들이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국가는 누구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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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질문 ― 누구의 수복이었는가
9월 27일, 서울은 환호했지만 대전과 여수는 피로 물들었다. 국가적 승리의 기억 뒤에, 이름조차 기록되지 못한 이들의 죽음이 있다. 전쟁은 언제나 명분을 앞세우지만, 그 명분 뒤에는 수많은 개인의 삶이 잘려나간다.

오늘 우리가 묻고 싶은 질문은 단순하다. 그날의 ‘수복’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
민중의 환호 속에 가려진 총성, 국가의 승리 속에 묻힌 이름 없는 무덤을 함께 기억할 때, 비로소 우리는 전쟁의 진실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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