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서명으로 시작했고, 다음 날의 선택으로만 유지되었다

1993년 백악관 잔디밭에서 라빈과 아라파트가 악수를 했다. 그들이 서명한 문서는 ‘임시자치에 관한 원칙선언’, 흔히 오슬로 협정이라 불렸다. 문서는 먼저 서로를 인정한다는 간단한 문장으로 길을 열었고, 가자와 제리코에서부터 제한적 자치를 시작하자는 절차를 적었다. 치안 협력의 틀도 넣었고, 예루살렘·난민·정착촌·국경·물 같은 가장 어려운 의제는 ‘최종 지위 협상’으로 미뤄두었다. 종이에 적힌 약속은 분쟁을 통제할 규칙을 만들었지만, 가장 뜨거운 쟁점은 다음 날로 넘겨졌다.

그다음 날부터 현실은 문장을 시험했다. 정착촌은 계속 늘었고, 검문소와 이동 통제는 일상의 속도를 늦추었다. 폭력은 상호 보복의 고리를 만들었다. 그 와중에 라빈이 암살되면서(1995) 정치적 동력은 급격히 식었다. 이후의 선거와 폭력은 오슬로의 신뢰를 닳게 했고, ‘임시’는 기한을 놓친 채 오래된 임시성으로 굳어졌다. 그럼에도 상호 승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탄생, 단계적 치안 협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유산으로 남았다.

30년이 지나 오늘, 우리는 또 다른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그 문서를 다시 펼쳐 보게 된다. 2023년 10월 7일의 대규모 공습과 인질 사태, 그리고 이어진 가자지구 전쟁은 희생을 끝없이 불렸다. 공개 자료 기준으로 2025년 9월 초까지 보고된 사망자는 팔레스타인인 6만 4천여 명, 이스라엘인 1,900여 명을 넘었고, 인질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일부는 교환·구조·휴전 합의로 돌아왔고, 일부는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다. 전쟁은 가자에만 머물지 않았고, 서안에서도 치명적 충돌과 강제이주, 정착민 폭력이 누적되었다. 이 모든 장면은 ‘다음으로 미뤘던 의제’들이 그대로 폭발한 결과라는 것을 보여준다.

국제사회는 뒤늦게 ‘둘 국가’의 해법을 다시 꺼냈다. 2025년 9월 유엔 총회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두 국가 해법에 시간표를 부여하는 선언을 큰 표차로 통과시켰다. 그 문서에는 10·7 공격에 대한 규탄과, 가자에서의 인도주의 참사에 대한 우려가 함께 적혔다. 선언은 즉각적 평화를 만들지는 못하지만, 오슬로가 열었던 문턱을 다시 제도적 문턱으로 복원하려는 신호였다. 문제는 언제나 같았다. 선언이 다음 날의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 즉 정착 동결·이동 자유·경제 회복·책임의 제도화를 현실에서 동시에 움직일 수 있는가였다.

오슬로의 교훈은 추상적이지 않았다. 첫째, 지형을 바꾸는 변화가 곧 신뢰였다. 정착 동결과 통행 완화가 눈에 보일 때만 문서는 믿음을 얻었다. 둘째, 시간표는 스스로를 지키는 장치여야 했다. 임시가 임시로 남으려면, 미뤄둔 의제를 다루는 순서와 기한, 불이행의 비용이 정확해야 했다. 셋째, 내부의 극단을 정치의 원 밖으로 밀어내면 거리에서 더 큰 소음이 만들어졌다. 라빈의 부재 이후 과정이 무너진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넷째, 제3자의 보증과 점검이 필요했다. 약속을 지키면 무엇이 달라지고, 어기면 무엇을 잃는지 국제적 규칙이 상시로 작동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진실과 책임 위의 화해가 병행되어야 했다. 피해의 기록과 배상, 전쟁범죄 조사와 인권보호가 평화의 기반일 때만, 삶은 협정문을 신뢰했다.

오늘의 전쟁은 오슬로가 실패해서가 아니라, 오슬로가 미뤄놓은 것을 끝내 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다. 그렇기에 해결의 언어도 새롭지 않다. 상호 승인이라는 최소선을 다시 확인하고, 영구 임시성을 끝낼 시간표를 정하고, 이동과 안전과 경제를 동시에 완화하는 생활의 평화를 먼저 체감시키는 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질과 민간인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는 즉각적 인도 조치가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 종이에 쓴 평화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것이 내일을 버티려면 그날의 서명만큼이나 다음 날의 결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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