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의 역사

9월 5일, 《황성신문》 창간― 민중의 눈과 입이 된 대한제국의 언론

1898년 9월 5일 창간된 《황성신문》은 대한제국의 격동기 속에서 민중의 눈과 입이 되었으며,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을 통해 국권 수호의 상징으로 남았다.



대한제국과 언론의 태동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자주독립국임을 세계에 알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청일전쟁 이후 커져버린 일본의 영향력, 러시아와 열강의 간섭, 내부의 정치 불안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 시기 언론은 단순히 소식을 전하는 매체가 아니라, 나라의 운명을 지켜내고 민중의 의식을 일깨우는 도구였다.

《독립신문》, 《제국신문》 등 다양한 신문들이 등장하던 가운데, 1898년 9월 5일 《황성신문》이 창간되었다.
“황성(皇城)”이란 이름은 곧 수도 한양, 즉 나라의 중심에서 목소리를 내겠다는 상징이었다.



---

《황성신문》의 성격과 독자층

《황성신문》은 한문체로 발간되었고, 독자는 주로 유학자, 관료, 지식인이었다.
겉으로는 보수 성향을 띠었지만, 실제 논설의 뿌리에는 국권 수호, 민족 자존, 민중 계몽이라는 강한 의지가 자리했다.

신문은 단순히 국내 소식을 전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 외세의 침략과 불평등 조약의 문제를 비판했고,
  • 의병운동과 애국계몽운동을 지지하며,
  • 민중이 현실을 직시하도록 끊임없이 목소리를 높였다.




장지연과 〈시일야방성대곡〉

《황성신문》의 상징 같은 사건은 바로 1905년 11월의 을사늑약 체결 직후다. 논설위원 장지연은 신문 1면 사설에〈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실었다.
제목 그대로 “이 날에 목 놓아 크게 울었다”는 통곡이었다.

그는 글에서 을사늑약을 맺은 다섯 대신을 “을사오적”이라 규탄했고,
“백성은 울부짖고, 천지는 진동하며, 역사는 이를 기록할 것이다”라고 절규했다.
이 논설은 당대 사람들에게는 충격이었고, 지금까지도 한국 언론사에서 가장 강렬한 사설로 꼽힌다.


시일야방성대곡을 현대어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지난날 이토 후작이 한국에 오자, 우둔한 우리 백성들은 서로 말하기를 “후작은 평소 동양 삼국의 균형과 평화를 책임진 인물이라 하니, 이번에 한국에 온 것은 반드시 우리 나라의 독립을 굳건히 세울 방책을 전하기 위함일 것이다.” 라고 하여 항구에서 서울까지 관민이 환영하였다. 그러나 세상일은 참으로 예측하기 어렵도다. 생각지도 못한 다섯 가지 조약 조건이 제시되었으니, 이것은 단지 우리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양 삼국 전체를 분열시키는 조짐을 만드는 것이었다. 과연 이토 후작의 본심이 어디에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 황제 폐하께서 강경한 뜻으로 거절하셨으니, 그 조약이 무효로 돌아갈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아아, 저 개돼지보다 못한 이른바 정부 대신들이 영리만을 구하고 위협에 두려워 주저하며 매국노 노릇을 자청하여, 사천 년 강토와 오백 년 종묘사직을 남에게 바치고, 이천만 백성을 남의 노예로 만든 것이 아닌가. 특히 외부대신 박제순 등은 더 말할 필요도 없고, 참정대신은 정부의 수반이면서도 책임을 피하고 명예만 얻으려 하였으니, 김상헌처럼 통곡하지도 못하고, 정문부처럼 할복하지도 못한 채, 그저 살아남아 세상에 얼굴을 내민 것은 무슨 낯으로 황제를 뵈며, 무슨 낯으로 이천만 동포를 대할 수 있단 말인가. 아아, 슬프도다. 아아, 분노로다. 우리 이천만 노예가 된 동포여, 살아 있는가 죽었는가. 단군 이래 사천 년 국민 정신이 하루아침에 꺼져버릴 것인가. 통탄스럽도다, 통탄스럽도다. 동포여, 동포여!


일본의 탄압과 신문의 폐간

〈시일야방성대곡〉은 곧바로 일본의 검열과 탄압을 불러왔다.
《황성신문》은 강제로 정간되었고, 장지연은 투옥되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언론 탄압을 넘어, 대한제국의 주권이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이후 《황성신문》은 간헐적으로 복간되었지만, 끝내 1910년 한일병합 무렵에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 정신은 이후 애국계몽운동과 독립운동 언론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황성신문》이 남긴 의미

《황성신문》은 언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교과서 같은 존재다.

단순한 뉴스 전달이 아니라 국민을 일깨우는 지식의 불씨가 되었고,

권력의 감시자가 아니라 민족의 대변자로 기록되었으며,

나라를 지키려는 지식인들의 절규를 역사에 남겼다.





오늘 우리에게 남은 뜻

오늘날 언론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
때로는 권력에 휘둘리고, 때로는 자본에 종속되기도 한다.
하지만 《황성신문》이 보여준 정신은 분명하다.

👉 언론은 권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 진실을 밝히고, 민중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하며,
👉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목숨을 걸고라도 민족의 목소리를 기록해야 한다.

1898년의 창간은 단순한 신문의 시작이 아니었다.
그것은 “언론의 사명은 곧 민족의 사명”이라는 선언이었다.




📌 해시태그

#오늘의역사 #9월5일 #황성신문 #근대언론 #시일야방성대곡 #장지연 #대한제국 #언론의사명 #국권수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