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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9월 1일, 간토 대학살 – 지진보다 무서웠던 것은 인간이었다


1. 재난이 만든 공포, 그러나 인간이 만든 비극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관동 지방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규모 7.9의 거대한 지진은 도쿄와 요코하마를 삼켰고, 건물은 흔적도 없이 주저앉았다. 불길은 도시를 집어삼켰고, 거리에는 비명과 울음이 가득했다.

재난은 누구에게나 평등했다. 일본인도, 조선인도, 중국인도 모두 똑같이 불타는 거리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뛰어다녔다. 그러나 불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을 덮친 것은 지진의 여진이 아니라, 지진 뒤에 몰아친 ‘인간의 광기’였다.

사람들은 갑자기 유언비어를 들었다.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
처음에는 누군가의 근거 없는 말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불안은 삽시간에 공포로, 공포는 순식간에 폭력으로 변해갔다.

지진이 도시를 무너뜨렸다면, 인간은 그 순간 인간을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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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언비어와 국가의 책임

간토 대학살의 비극은 단순히 ‘군중의 히스테리’로 치부할 수 없다. 문제는 국가의 책임에 있었다.

일본 경찰과 군은 유언비어를 단속하기는커녕 오히려 퍼뜨렸다. “조선인들이 방화를 하고 있다.” “조선인들이 폭동을 준비한다.”라는 방송과 전단은 공포를 증폭시켰다. 언론은 사실 확인 없는 기사로 이 공포에 불을 붙였다.

국가는 공포를 진정시키는 대신, 적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했다. 혼란 속에서 희생양을 세우면, 국가 권력은 자신들의 무능을 감출 수 있었다. 그 희생양이 바로 재일 조선인이었다.

“한 줄의 거짓말이 수천 개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 문장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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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학살의 현장

조선인들이 잡힌 이유는 단순했다. 억양이 다르다는 것, 일본어 발음이 서툴렀다는 것. 심지어 길에서 ‘수박’을 ‘슈이카’라고 발음하지 못했다고 죽임을 당한 사례도 있었다.

군인과 경찰은 집단을 이끌었고, 자경단은 도검과 몽둥이를 들고 거리를 누볐다.
체포된 이들은 신분 확인도, 재판도 없었다.
길가에서, 마을 광장에서, 강둑에서 수백 명이 ‘즉결처분’이라는 이름으로 살해되었다.

아이도 예외가 아니었다. 노인도, 여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좌익과 연루되었다”는 허위 혐의, “폭동을 준비했다”는 조작된 이유,
그 어떤 말도 결국 죽음을 정당화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했다.

총소리가 메아리친 자리에는 이름 없는 무덤이 늘어갔다.
유족들은 입을 다물어야 했다. 말하는 순간 또 다른 희생자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침묵은 일본 안에서 100년 가까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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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국가 폭력의 구조와 역사적 비교

간토 대학살은 ‘지진의 부산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국가 폭력의 구조적 산물이었다.
식민 지배하에서 조선인은 언제나 잠재적 ‘불순분자’, ‘범죄자’로 규정되어 있었고, 그 차별은 사회 전반에 뿌리내려 있었다. 지진은 단지 그 폭력 구조를 드러낸 계기일 뿐이었다.

이는 한국 현대사와도 겹친다.
1948년 제주 4·3 사건, 1950년 보도연맹 학살, 1980년 광주.
국가는 언제나 혼란과 위기를 빌미로 국민을 적으로 규정했고, 군과 경찰은 폭력을 합리화했다.
피해자는 늘 약한 자, 변방에 사는 자, 목소리 없는 자들이었다.

“지진보다 무서운 건 혐오였다.”
간토에서 시작된 이 문장은, 한국 현대사에서도,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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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오늘의 교훈

간토 대학살은 단순히 일본의 흑역사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묻는다.

위기 상황에서 혐오와 차별은 얼마나 쉽게 폭력으로 전환되는가.

언론과 국가 권력이 거짓을 퍼뜨릴 때, 그 피해는 어디까지 이어지는가.

그리고 우리는 이런 폭력을 기억하고 있는가.


오늘날에도 ‘외국인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가짜 뉴스가 순식간에 퍼지고, 특정 지역·인종에 대한 혐오가 인터넷과 거리에서 재생산된다. 간토 대학살의 구조와 다를 바 없다.

“국가는 국민을 지켜야 한다.”
“재난은 사람을 시험하지만, 혐오는 사람을 무너뜨린다.”
이 두 문장은 우리가 간토 대학살에서 반드시 새겨야 할 진리다.




📌 맺음말

1923년 9월 1일, 도시는 무너졌다. 그러나 더 끔찍한 것은 인간이 무너졌다는 사실이다.
간토 대학살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다. 그날의 비극은 여전히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기억하는 한, 그들의 죽음은 침묵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기록하는 한, 그들의 고통은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할 교훈이 된다.
지진보다 무서운 것은 혐오였다.
그리고 그것을 막을 수 있는 힘은, 오직 우리의 연대와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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