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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온도

담담한 수용 24℃ 완벽하지 않은 나를 인정하며, 뜨거움과 차가움 사이의 회색지대에 서다

1부: 해동 구간 (1℃~30℃)

담담한 수용 24℃  완벽하지 않은 나를 인정하며, 뜨거움과 차가움 사이의 회색지대에 서다

1. 찰나의 위로가 연결되어 만든 단단한 지반

앞선 단계에서 우리는 길고양이와의 눈맞춤이나 시원한 맥주 한 모금 같은 찰나의 순간들에서 미약한 온기를 느꼈다. 이 새로운 온도의 구간은 그 점점이 흩어져 있던 작은 자기 위로의 경험들이 연결되어 하나의 면을 이루기 시작하는 단계다.

이제 우리는 감정의 양극단, 즉 펄펄 끓는 수치심의 열기나 차갑게 식어버린 냉소 사이에서 위태롭게 줄타기하는 것을 잠시 멈춘다. 대신 그 중간 어디쯤,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온도에 발을 딛고 서서 자신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극적인 행복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더 이상 스스로를 몰아세우지는 않는 상태. 그것이 바로 이 단계가 주는 안정감이다.

2. 스피노자의 당부: 비웃지도, 한탄하지도 말고 그저 이해할 것

17세기를 살았던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가 남긴 유명한 당부가 있다. 그는 사람들이 겪는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와 삶의 고통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비웃지 말고, 한탄하지 말고, 저주하지 마라. 그저 이해하라."

이 문장만큼 지금 우리의 상태를 잘 짚어주는 말이 또 있을까. 앞선 냉소의 시간 동안 우리는 세상을 향해 삐딱하게 비웃음을 날렸고, 뜨거운 고통 속에서는 내 처지를 끝없이 한탄했다. 하지만 겨우 숨을 고르고 나 자신을 돌아보는 지금, 우리는 그 무거운 심판관의 망치를 슬며시 내려놓게 된다. "반드시 행복해야 해"라거나 "절대로 상처받으면 안 돼"라며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대신, "아, 내가 지금 좀 우울하구나", "오늘 내 모습은 좀 어설펐네.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나라는 사람의 자연스러운 상태를 가만히 끄덕여보는 것이다. 가르치거나 억지로 고치려 들지 않고, 그저 가만히 이해해 주는 태도다.

3. 최악을 막아서는 일상의 소소한 방어선

이러한 수용의 태도는 일상의 풍경을 드라마틱하게 바꾸지는 않지만, 그 풍경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주말 내내 무기력하게 누워있다가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를 마주했을 때를 떠올려보자. 이전 같으면 "난 역시 구제 불능이야"라며 자기 비하에 빠졌겠지만, 이 덤덤한 수용의 상태에 이르면 그저 한숨을 한 번 내쉬고 고무장갑을 낀다. "그래, 일단 컵 하나만이라도 닦자"라고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거울 속의 푸석한 얼굴을 보며 비난을 퍼붓는 대신, 그저 로션 하나를 더 발라주는 것. 대단한 긍정이 아니라, 최악으로 치닫는 마음의 브레이크를 밟고 현재의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겠다는 다짐과도 같은 행동들이다.

4. 진정한 회복을 위한 질척이는 흙바닥

이 담담한 수용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진정한 회복을 위한 가장 단단한 기초 공사가 되기 때문이다. 상처 난 땅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다져야 그 위에 새로운 것을 심을 수 있다.

우리가 마주한 이 온도는 아직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봄은 아니다. 오히려 얼었던 땅이 녹아 질척이고 흙냄새가 나는 투박한 상태에 가깝다. 하지만 그 질척이는 땅 위에 비로소 두 발로 단단히 서서, 도망치지도 않고 과장하지도 않은 채 내 삶의 무게를 오롯이 느껴보는 것. 그것이 진짜 해동의 과정이다.


담담한 수용: 24℃

24℃는 ‘찰나의 위로들이 모여 만들어진 안정감을 바탕으로, 자신의 불완전한 상태를 평가 없이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단계’다. 즉, 스피노자의 다정한 당부처럼 나를 한탄하거나 비웃는 대신,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회색지대에 서서 "이 정도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단단한 마음의 상태.